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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희 Sep 06. 2021

50의 무게

노안과 오십견

드디어 오늘 나가서 미루고 미루던 돋보기 안경을 맞췄다.

집에 말하자면 은행에 놓여있을 법한 돋보기 안경이 하나 있데, 시력이 잘 맞지 않아 그동안 어지러웠다. 게다가 그 안경의 알은 아크릴 재질이라 투명하지가 않고 뿌연 느낌이 있어서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가 않는다.

너무 비싸려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알은 3만 원이면 살 수 있었고, 테는 내가 고르기 나름인데...

아저씨가 테 비싼 거 할거 없다며 만 원짜리 뿔테 코너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아놔,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뿔테는 언제적 뿔테입니까... 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거든요?

하나도 유행에 안민감하게 생겨가지고 결국 요즘 유행하는 최신 디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위에 뿔이 얄쌍하게 들어가 있고 아래는 금속 재질인, 아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으로 골랐다.

사만원입니다. 합해서 7만원. 내 눈 값 7만원. 그래, 이 정도 나에게 과한 건 아니겠지... 어차피 돋보기 알을 끼우면 테의 쌈박함이 절반 이상은 깎여나갈걸 알면서도 나는 기어이 그것으로 골랐다. 어쨌든 만족스러웠다. 한 시간이면 내 눈이 완성된다.


나는 비공식적으로 71년생, 올해 51세다. 왜 비공식이냐고? 호적에 한 살 어리게 되어 있거든.

어릴 때는 한 살이라도 아 보이려고 주민증을 애써 숨겨가며 71년생이라고 박박 우겨댔었는데, 이젠 반대로 호적 나이가 내 진짜 나이라며 보란 듯이 주민증을 펼쳐 보이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아이고, 의미 없다!라는 걸 알면서도, 난 아직 만 49세이길 바라는 비공식 51세. 

덕분에 코로나 백신 예방 접종 대상에서 후순위로 밀려나, 18세에서 49세 사이섞여 주사를 맞게 으니...  말이 돼? 이럴 땐 또 경로우대 안해준다며 난리난리 생난리.


나이 오십이 되면서 제일 먼저 오십의 무게각하된 건 바로 오십견의 발병이었다.

오십견은 완전히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희한하게도 오십견이라는 병나이 딱 오십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왔다. 어서 와! 오십은 처음이지?

처음엔   어깨가 왜 이러지? 잠을 잘 못 잤나?로 시작, 점점 통증이 면서 앞뒤 옆 아무 데로도 움직이지 않는 내 왼팔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간의 나의 등 긁는 행동, 옷을 입고 벗는 행위, 개운한 때 목욕, 심지어 그냥 누워서 자는 매우 일상적이고 당연한 행위조차 허락되지 않다. 새삼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이었는지 저리 깨달으며  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리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 고통은 얼마의 휴식기를 가진 후 다시 나의 오른쪽 어깨로 고들었. 뭐야! 이거 끝난 거 아니었어?

그렇게 두 번째 고통이 시작되었다. 한번 겪었다고 금은 행인지 불행인지 익숙한 느낌저 든. 그냥 나 죽었소하고 알아서 기는 중이.


친정엄마는 오십견을 앓아본 적이 없다. 이게 오십이 됐다고 누구에게 찾아오는 것 아니다. 

선별적 발병. 기준은 모른다.

문제는 정작 병 자체보다, '앓아보지 않은 자'가 늘어놓는 잔소리에 있었다. 병원 서 주사 한 대만 맞으면 금방 낫는 줄 아는 '앓아보지 않은 자'.

대게 오십견은 시간이 지나야 낫는 병이라, 딱히 병을 낫게 해주는 치료 없고 그저 통증을 줄여주는 밖엔 없다! 고 그렇게 얘기는데도, '앓아보지 않은 자'들은 내게 한사코 병원에 가서 주사라도 한번 맞아보 성화다. 누구누구도 어깨가 엄청 아팠는데, 병원 가서 주사 한방 맞고는 싹 나았다더라...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같은 말씀이다. 물론 내가 걱정되서 그런다는건 나도 다 알지만...

남편도 그 '앓아보지 않은 자' 하난데, 나이가 나이다 보니 엘보 증상 앓고 다. 난 여름 친구가 추천해 줬다며 어느 병원에 팔꿈치에 주사한번 맞았는, 녀와서는 신기하게 안 아다며 나보고 당장 한번 가보다.

그 소리를 듣는데 누가 솔깃하지 않겠나.

이제 나 주사 한방이면 낫는 거야? 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따라갔건만, 결론적으로 난 아직도 오십견을 앓고 있다. 

남편이 한마디 한다.

"너 진짜 많이 아프구나?"

그럼 꾀병인 줄 알았니?

앓아보지 않은 자들은 지금도 나만 보면 병원에 가라 가라 성화고, 나는  설명하고 설명하고.

도 않는 주사 소리좀 그만하고, 김치나 사먹자하면 안 되겠니?!


사십 중반이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화 거울을 통해서만 느껴졌다.

여기가 왜 이렇게 처지지? 늘어지지? 화장품에, 초음파 기기에, 콜라겐에, 양 태반에, 루테인까지 마구마구 사들였다.

지금은 굳이 거울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나의 노화를 몸소 느낄 수 있 되었다.

안 보이는 눈에, 아픈 어깨에, 삐걱거리는 무릎에, 년기 열감에,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단어에... 이제 그 어떤 기계도, 영양제도 나에게 끼치는 영향 극히 미미다.


나이에 걸맞은 인격, 젊은 사람들에게선 찾을 수 없는 우아함과 여유, 현명함... 이런 것들은 그저 노화를 위로하기 위한 한낱 화려한 미사여구만 들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순순히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지, 나이가 든다고  우아해지고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기에.

다만 나잇값도 못하는 꽉 막히고 추한 아줌마나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한시간 뒤, 내 눈이 완성되었으니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처음으로 써보는 돋보기 안경.

젊을때는 먼곳을 보고 달려가기 바빴는데, 이제 이 새로운 눈으로 가까운 곳을 보고 잘 살펴야겠다.



+ 여담 :

일전에 아버님 고향 친구분께서 집에 놀러 오셨는데, 주거니 받거니 술 한잔 걸치시고는 느닷없이 서로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아니다 내가 더 아프다, 노인 두 분이 서로 본인이 더 아프다며 질병 배틀 시작다.

이놈이! 내가 더 아프다 이놈아!

이놈이라니! 너 맻살이냐! 형님도 몰라보고!

형님은 무슨! 나이도 어린 게! 니 나이에 난 날아다녔다 이놈아....


아이고 아버님들! 제가 잘못했어요...

나이도 어린 것이 맨날 나이 타령이나 하... 앞으로 활기차게 열심히 잘 살아볼게요...!

모처럼 미용실 방문. 이 파마가 끝나면 난 분명...
어느덧 '여신'으로 변신!
...할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냥 파마한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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