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대항하는 나를 보며..
117년 만에 폭설이 내린 지도 벌써 3주가 되어가고 나흘 뒤면 일 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가 찾아온다. 12월 중순 영하 8도까지 내려가며 계절은 한참 매서운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겨울은 나에게 가장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성인이 되고 난 어느 시점부터 (아마 서른 즈음부터인듯하다) 나는 겨울이 되면 완전무장을 하며 몸과 마음을 겨울을 이겨낼 태세로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오한과 감기몸살로 겨우내내 침대 속에서 보내며 패배하는 쪽은 나다. 그리고 외국에서 아이를 낳고 6시간 만인 새벽에 찬바람을 맞으며 병원에서 나와 산후조리라는 것을 하지 못해 산후풍까지 온 후로 나의 몸은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싸움도 안 되는 적수와 싸우러 나가야 하는 작디작은 공포에 움츠린 한 마리 강아지가 되고 만다.
아이를 낳고 한국에 온 지 3년 차, 첫해에는 바깥에만 나갔다 오면 온몸에 오한이 들어 며칠이고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고, 다음 해는 핫팩을 온몸에 무장(?)하고는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며 3년 차인 올해는 그래도 아직까지 핫팩 없이 밖에 나가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영하의 날씨가 되면 아무리 꽁꽁 싸매고 나간다 하더라도 잠시의 외출 만으로도 바람이 들어버리는 나의 몸은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뉴질랜드로 다시 내년 초 이주하기 위해 우리의 한국에서의 보금자리를 정리하고 나와 아이, 신랑은 친정과 시댁에서 지내고 있지만, 어제는 아이와 함께 자기 위해 시댁에 갔다. 어머니댁과 친정은 모두 지어진 지 30년이 지난 오래된 아파트이다. 친정집은 개별난방으로 바뀌어서 집에서 따로 난방을 할 수 있는 반면, 어머님 댁은 아직도 중앙난방식이어서 하루 몇 번만 보일러를 가동해 준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신랑과 아이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친정집에 지내고 있었다. 어머님이 도와주시지만 신랑이 거의 아이를 어린이집 하원해서부터 케어하고 아침까지 케어하고 있는데 나만 혼자 편히 친정에만 있을 수 없어 어제부터 이번주는 시댁에서 지내보기로 한 것이다. 하필 주말에 약속들이 있어 여기저기 다녀오느라 몸은 이미 감기몸살이 난 상태지만, 잘 때 필요한 핫팩들과 나만의 엑스트라 담요 외에 두꺼운 실내복들까지 챙기며 나름 우리집보다 추운 어머님댁에서 지낼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시댁에 도착해 아이와 놀고 아이를 재우고 잠이 들려는데 바닥이 여전히 냉기가 돌았다.
" 어머니, 아직 바닥이 차네요. 아직 보일러를 안 넣어주었나 봐요."
이쯤 되면 난방을 해주지 않나 싶어, 어머니께 여쭤보자, 어머니는 크게 개의치 않으신다는 듯,
" 그러게, 원래 이 정도인 거 같은데?" 하는 답변만 하셨다. 친정 집 같으면 이미 초저녁부터 보일러를 높여 놨을 나이지만, 이미 여기에 온 이상 '새벽에는 그래도 난방을 해주겠지.' 하며 핫팩을 따뜻하게 하고 이불을 여러 겹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찬 공기에 으슬으슬하며 어찌어찌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몇 시간 눈 붙였을까? 이번엔 온몸을 감싸는 한기로 잠이 깼다. 아이도 깨고, 신랑도 깼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혹시나 해서 바닥을 만져보니 이번엔 거의 냉골이다. 난방을 했으면 절대 이 정도일 수 없는 온도였다. 신랑은 내가 잠 못 잘 것을 알았는지, 지금이라도 친정에 가라고 했지만 이 시간에 밖에 나가는 건 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핫팩을 다시 데우고, 이불을 하나 더 덮고 누우려는 찰나 저어기 방구석에 아이 목욕할 때 어머님이 한 번씩 트셨던 히터가 눈에 띄었다. 저거다 싶어 얼른 히터를 틀었다. 그러니 조금 방 안의 냉기가 가시는듯했다. 그러자 아이도 잠에 들고 신랑도 잠에 들었다. 나도 다시 눈을 붙였다. 새벽에 잠을 뒤척여서 인지 우리는 아홉시가 거의 다되서야 눈을 떴지만, 몸은 아직도 추위로 인해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도 설상가상 찬바람 때문이었는지 목이 아프다 하고 온몸이 열이 났다. 아침만 간단히 먹이고 아이 병원을 가기 위해 어머님 댁을 나섰다. 그렇게 아이 병원에 들러 우리 셋은 친정으로 왔다. 어제 싸간 짐을 고스란히 싸 온 나를 보며 엄마가 묻는다.
" 엥? 벌써 온 거야? 하루 만에?"
" 응, 하루도 오래 있었던 거야. 새벽에 올뻔했어..."
역시나 나는 추위에 KO 당했다. 그것도 하루 만에..
너무 신기한 건 그런 곳에서 어머님 아버님은 아무렇지 않게 잘 주무시고, 잘 생활을 하신다는 것이다. 어제가 유독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져 추운 날씨여서 아이도 컨디션이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신랑과 아이는 생활하기에 그렇게 추워하지 않았다. 나만.... 이렇게 추위에 떨었고, 추위를 두려워했고, 결국 추위에 참패당했다.
하루만에 온 친정집에서 감기약을 먹고 한 차례 땀을 내고 자고 나니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다. 저녁을 먹고 책을 들었다. 소로우가 말한다.
" 계절이 지나가는 대로 각 계절 속에 살아라. 각 계절의 영향력에 너 자신을 맡겨라. 독기와 병마는 우리 내부에서부터 온다. 자연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연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이다. 그러니 자연에 저항하지 말라. 일부러 건강해지려고 애쓰지 않을수록 병드는 일도 없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특정한 계절이 몸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계절 탓이 아니라 자기 자신 탓임을 사람들은 잊고 산다." (주1)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나에게 말하는 듯하여 순간 얼음이 된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무언가를 저항하면 할수록 그것은 그림자가 되어 나에게 더 다가오는 것인데 나는 그 원리를 이해했다고 하면서 왜 이 추위에서만큼은 적용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왜 그렇게 추위 앞에 두려워하고, 움츠려 들고, 이겨내려 하고 저항하려 했던 것일까? 물론 그것이 나의 경험 때문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추위를 극복하는 대신 점점 더 나에게 추위를 끌어오고만 있었던 것이다. 참, 두려운 것이 많았다. 그것도 자연 앞에... 소나기가 두려워 비에 맞을까 조마조마하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차디찬 겨울이 오면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온몸 움츠린 채 기다려왔다.
어제 새벽, 한기로 인해 잠을 못 이루는 나에게 신랑은 넌지시 말했다.
" 이로써 한 단계 추위에 강해진 거라 생각해."
순간, ' 강해지긴 개뿔.. 온몸에 감기만 들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말이 맞는 말인 듯싶었다. 추위를 피해 따뜻하게만 하며 내 몸을 감싸려 하는 대신, 오히려 추위에 노출됨으로써 내 몸은 감기에 들었지만 그 감기가 지나면서 내 몸에 면역력이 생기고 그로써 나는 한층 더 추위가 강해지는 몸이 되는 것이다. 하는...
이번에는 소로우가 다시금 나를 깨트린다.
'자연에는 저항하는 게 아님을.. 그저 오는 소나기 피할 수 없고, 오는 추위 막을 수 없듯. 당연한 거라 여기고 그것앞에 나를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함께 할 때 내 몸도 더욱 그 대자연 속에서 강인한 자연들처럼 면역력을 스스로 키울 수 있음을.. 그렇게 나와 자연은 떨어져 저항하고 피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자연의 영향력 안에서 함께 자라나고 커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주1)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