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수선하다. 세상에 큰 관심이 없는 나도, 티브이를 보지 않는 나에게도 어수선함과 사람들의 말들이 들려온다. 그럴수록 더더욱 알고 싶지 않고 더더욱 티브이를 보고 싶지 않다. 그저 혼자 생각하길 '이미 언젠가부터 차를 타고 다니면서 눈에 뜨였던 서로를 겨냥하고 비판하는 현수막들을 볼 때마다 그저 한숨만 나왔었는데 드디어 터졌구나' 싶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잘못했는지 알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듣고 싶지 않은 건 그에 관한 세상사람들의 반응들이다. 대부분 정치인들에 대한 불평, 비난, 욕들뿐인... 나는 정치인이 아니니 그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그저 한 국민으로서 나와 다른 국민들을 바라볼 뿐이다. 어수선한 때인 만큼 말들이 많다. 나라걱정하는 말들이겠지 하면서도 정도가 넘는 것들도 많다. 내가 보탠 불평과 비난하나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그 이야기의 대상인 정치인에게 도움이 될까? 이 세상에 도움이 될까? 그리고 그들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우리는, 나는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살아왔는가? 나는 힘이 없는 일개 국민이니 그저 앉아서 뉴스 보며 그들 욕만 하면 되고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온갖 욕과 비난을 들으면서도 공명정대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은 나랏일을 해야하는 사람들이니 공명정대해야하고 올바르게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잣대는 과연 그들에게만 향해야 하는 것일까? 일개 국민인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와 그들은 구분이 없다. 나도 나와 이 세상을 위해 나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고, 그들도 그들 자신과 국민과 세상을 위해 그들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다를 것은 없다. 그러니 그들에게만 떠넘길 것이 없다. 세상에 실망하기 이전에 나는 이 세상에 얼마나 최선을 다해 실망시키지 않게 살아왔는가? 물론 선량하게 잘 지내면서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교통법규하나쯤 어기고, 쓰레기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리지 않고 휴양지에서 환경오염시키고, 재활용 제대로 하지 않는 등등 사소하지만 큰 나의 의무들은 잘 지켰냐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나는 규율을 잘 지키며 공동체의 소속원으로서 나의 직책과 임무에 맞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오롯이 내가 책임질 일을 책임지며 지내왔냐는 것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 현 상황은 우리나라의 성인 국민이면 다 알고 있다. 그럴 때일수록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의무와 내가 할 일을 올곧게 해 나가는 것이 국민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내 길을 내고, 내 뿌리를 단단히 하고자 오롯이 나의 임무만을 다하는 자연들처럼 말이다.
나도 불평을 하고 불만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느껴지는 것은 이 세상, 내가 사는 나라에 대한 커져가는 불신과 걱정뿐이었다. 그럴수록 믿음을 갖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조금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나의 머리가 복잡할수록,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내 안의 나에게 더 집중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불평과 비난이 아닌 믿음과 사랑의 씨앗을 찾는다. 그것이 나에게로부터 나와 발화하여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퍼져나갈 수 있도록..... 그것으로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다면 나는 오늘 세상에 보탬이 되는 하루를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읽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소로우의 일기>를 첨부한다.
당신이 누구길래 세상에 실망했는가? 오히려 당신이 세상을 실망시킨 게 아닌가? 과거에 믿을 근거가 있었다면 현재에도 믿을 근거가 있는 것이다. 불평하는 당신 안에 작은 사랑만 있다면 믿음은 충분히 그 작은 사랑 위에 세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