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에서의 3년 하고 3개월 남짓 지낸 우리 세 가족의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모든 짐들을 갖고 나왔다. 이제 한 달 후면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간다. 예정되어 있었지만 어쩌면 예정되지 않았을 수 있었던 시간들... 우선 배에 보낼 짐들을 챙겨 해운회사를 통해 보내놓고, 한 달간 지낼 옷 몇 벌, 필요한 물품 몇 가지들만을 갖고 나오면서 나는 3년 전 뉴질랜드 집을 비우던 그때가 오늘과 데칼코마니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5개월 된 아이를 케어하며 신랑과 둘이 밤낮으로 짐을 싸고, 집 정리들을 하고, 집을 내놓기 위해 매주 집을 치우고 자는 아이를 업고 나와 오픈홈을 했던 시간들.. 그리고 집에서 나와 친척집에서 아이와 함께 한 달간 머물러야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3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5개월이었던 아이가 그새 자라서 어린이집에 가있고 이삼짐 도와줄 양가부모님 외 가족들이 있다는 것일 뿐 큰 집들을 다 부치고 한 달여간 지낼 단출한 옷가지 몇 벌만 가진채 집 없이 부모님 댁에서 지내야 하는 여행자 신세가 된 것은 같았다.
한국에서 3년 3개월간 우리 세식구 보금자리였던 곳
3년여 3 식구 잠시 지낼 곳이어서 작은 투베드룸 오피스텔이었지만 크기와 상관없이 자가냐 렌트에 상관없이 내가 어느 곳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을 법적인 우리만의 머물 공간이 있다는 것은 삶에서 큰 안정감과 위안을 준다. 그러나 막상 그 집에서 나오고 나니 그것이 내 소유였다 한들 혹은 그 집이 방 4~5칸에 화장실 3개에 큰 호화로운 집이었든 뭐가 달랐을까? 어느 순간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때가 오면 우리가 3년에의 시간을 마치고 돌아가듯 그것은 그저 내가 이 세상에 머문 동안 잠시 빌려 썼다 다시 돌려주고 가야 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집도 그러한데 다른 물건들은 어떠할까? 옷이며 가방이며 생필품이며 내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사고 소유했던 모든 것들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때에는 모두 다시 이 세상에 반납하고 가야 하는 것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삶을 떠날 때에 오롯이 나의 것으로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옷가지와 단출한 생필품과 나의 몸이 있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는 그마저도 갖고 갈 수 없다. 육체는 불태워져 없어지고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나의 정신뿐이다. 우리가 아니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속세의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영적인 깨달음과 의식의 성장을 가장 큰 삶의 목표로 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퇴근길 항상 듣던 영어라디오 방송에서' 당신의 가장 큰 바람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진행자들이 청취자들의 대답을 소개하는데 나는 혼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깨달음을 얻는 거요..'라고,,어느새 나의 가장 큰 바람이자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는 더 이상 세속적인 것이 아닌 깨달음을 얻는 것이었다. 의식적으로 성장하고 진리를 깨닫고 영적인 진화를 이루는 것,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의 여행을 마치고 떠날 때 가장 든든하고 온전한 나의 정신을 가지고 저 세상, 내가 온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제 3년여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 달 후면 뉴질랜드로 돌아간다. 다시 돌아갈 때가 되니 그동안 못 만난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만날 사람들을 만나야 해서 마지막 한 달이 참 바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중에는 3년을 와서 지내면서 연락만 했지 한 번도 못 본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있다는 생각에 다음에 보지 하며 미뤄놨던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3년을 안 봤으면 안 봐도 되는 사람이야 할 수도 있지만 막상 가려하니 아쉬움에 얼굴이라도 한번보려 약속을 잡는다. 우리가 여행을 가면 그곳의 볼 곳, 가볼 곳, 해볼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려 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아니 앞으로는 다시 못 올 수도 있으니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짧게는 한 달 혹은 길게는 몇년씩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거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시간 안에 있는 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고 경험해야 그곳을 떠날 때 후회가 없음을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리의 남은 인생, 아니 얼마만큼 남은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여행 온 것처럼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의식적으로 데드라인을 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언제까지 여행 온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고 누리자. '라고 말이다. 그러면 해야 할것을 절대 미루지 않게 되고 만날사람 또한 미루지 않게되며 하루하루를 지금보다 조금더 값지고 알차게 보낼 수 있으리라!
어제(12월 2일) 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데 요즈음 내가 읽는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소로우의 일기> 중 1850년 7월 2일 자에 우연이지 신기하게도 여행자에 대한 글이 나와 적어본다.
여행자!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여행자는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우리의 인생을 가장 잘 상징하는 이 '여행' 아니겠는가? 개인의 역사란 결국 요약하면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