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1년 하고 6개월이 다 되어가던 날, 나는 나를 돌아봤다. 나의 모습이 어떠한가?
우선 생물학적 나이, 만 나이로 40, 불혹에 접어들었다. 나의 건강상태는 한국에 오자마자 산후우울증 직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약을 먹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황증세는 사라졌으나, 온몸에 한기가 드는 산후풍증세는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특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는 증세가 심해져 아침에 아이 어린이집 등원 시 온몸을 두꺼운 옷으로 감싸고 나가도 들어오면 아이 하원시간까지 핫팩에 전기담요에 온몸을 지지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도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온몸이 시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겨울에는 문밖을 나가는 게 거의 공포 수준이었다. 하루하루 아이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러 밖에 나가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하루의 챌린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아이 하원 때까지 침대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길어지자 나는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우울해져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할까? 내 몸은 언제 회복될 것인가? 희망은 보이지 않고 끝없는 의문만 들었다. 가족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이니 더욱 우울해졌다.
경제적인 상황도 좋을 리 없었다. 신랑은 18년 만에 처음 한국에서 취직해서 일을 하며 뉴질랜드와는 너무나 다른 한국의 조직문화와 과중한 업무에 힘들어했고, 그렇게 매일 같은 야근과 주말업무에도 수입은 뉴질랜드에서 야근 없이 정시에 나가 정시에 퇴근하며 버는 수입보다 더 나음이 없었다. 그렇게 신랑 혼자 버는 것으로 우리 세 식구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니 여유는 없었다. 뉴질랜드에 집만 두고 왔지 차며 가구들 모두 팔고 왔기에 우리는 언제고 들어갈 때에는 손에 넉넉한 돈을 들고 가야 했다. 그러려면 내가 일어서야 했다. 내가 신랑을 도와 벌어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가족들의 도움이 없이는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대로 지금처럼 누워만 있다가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무언가 내적, 외적 변화가 시급했고,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어야만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누워있는 시간 무언가라도 해야겠는 마음에 나는 머릿속으로 나의 꿈들을 다시 되새겨본다. 내가 원한 삶이 무엇이었나? 10년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더 이상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도움 받는 삶이 아닌 내가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여유로워져서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었다. 딱 그거였다. 내가 사랑하는 내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금전적, 마음적, 정신적으로 베푸며 살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것으로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나의 꿈을 다시 되짚어 올라가 본다.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나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꿈을 이루기 위해 신이 나에게 주신 도구가 무엇인지..
글쓰기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글 쓰는 걸 책 읽는 것만큼이나 좋아했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나에겐 종이와 연필처럼 한 세트였다. 그 시작이 뭐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으면 단 한 줄이라도 독서기록장에 그 책을 읽은 느낌을 적었다. 그리고 나는 유독 도서관에서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새로운 분야, 내가 알지 못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에 빠져드는 그 느낌과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사는 듯한 느낌은 황홀했고, 새로운 경험은 매번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고 그 느낌들을 글로 적어 놓으면 그 경험들이 나에게로 와 내 것이 되는 것 같았다.
꿈을 위한 첫 시작 - 브런치 작가가 되다.
작년 친한 예전 직장동기 동생으로부터 브런치를 소개받았다. 그 친구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그 동생에게 브런치가 어떤 곳인지를 물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대해 알게 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을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나의 첫 목표로 삼았다. 추워서 이불속에 꽁꽁 싸매고 누워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글감을 떠올렸고, 주제를 생각했고, 내가 작가가 되면 어떤 글을 쓰리라는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몸이 조금 나아져 책상에 앉게 되는 날이면 부리나케 머릿속에 생각들을 글로 적었고, 그 글들을 다듬어서 작가신청을 했다. 올해 첫 목표였고, 그래서 나는 작년 말 브런치에 신청을 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렸다. 결과는 '합격.' 난 작가가 되었다. 이제 글만 써서 올리면 된다. 발판은 마련되었다. 그때부터는 누워있어도 매일 가슴이 웅웅 울렸다.
' 나 이제 작가가 됐어. 뭘 쓰지? 어떻게 쓰지? 어떤 글부터 올리지?'
첫 글을 발행했다. 라이크가 찍힌다. 알 수 없는 설렘이 찾아온다. SNS에 내가 올린 게시물에 라이크가 달리는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비교가 되지 않는 셀렘이다. 첫 글을 발행하고 나니 얼른 다음 글을 올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게 원활유구나. 일주일에 적어도 한 개의 글을 발행하기로 한다. 글이 여러 개가 올라오니 구독자수가 는다. 신기하다. SNS 팔로워수 느는 것보다 그 수가 적고 더디지만,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 무언가 더 진정성 있고 깊은 느낌이다.
그렇게 한 주 한 주 글을 발행하고, 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것이 나의 낙이 되었다. 유일하게 내가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는 것이 글을 읽는 것이었다. 아직 밖에 나가는 게 힘들어 서점에 가기도 도서관에 가기도 어려운 나에게 브런치는 정말이지 나를 위한 공간이었다. 세계 이곳저곳에 있는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예전 도서관에서 여러 책들을 탐험하던 때가 떠올랐다. 이렇게 손쉽게 스크롤 몇 번만으로 집 밖을 나가 책을 빌리지 않고도 이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웠고, 이런 플랫폼을 만든 브런치에게 너무 감사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느 작가의 글 하나가 나의 가슴을 후벼 파며 나에게 박혔다. 그 하나의 글이 나의 가슴에 들어박힌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은 엄청난 파동의 효과로 나의 삶에 들어와 나의 이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