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육의 기쁨만을 위해 살 것인가

by 해보름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리라. <고린도전서 2:14>”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2 >”


육의 기쁨은 즉각적이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영의 기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을 바꾼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어리석게 여긴다. 그러나 어리석어 보이던 십자가가 결국 나를 살렸다.

우리는 언제까지 소비되는 기쁨, 죽어 없어질 육의 기쁨만을 위해 살 것인가. 이제는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고, 그것으로 열매 맺는 기쁨을 위해 살 차례가 아닐까.


세상의 영, 세상의 가치관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올라가야 한다. 지금 가진 것을 바라보며 감사하기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해서 성취하고 쟁취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우리는 이미 그 자체로 충만하다. 단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신앙은 더 애써 올라가는 것이 아니 이미 내가 가진 것, 이미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닫기 위해 눈이 열리는 과정이다.


노력의 결과가 아닌 믿음이라는 선물로 이미 나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

이미 이 자체로 온전한 존재라는 것,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이미 충만하다는 것.

신앙은 바로 그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눈이 아닌 영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육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이뤄나가는 빛의 통로이자 수단이다.


내가 받은 것, 이미 내가 가진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흘려보내는 통로이자 수단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몸 또한 소홀히 여겨져서 안된다.


몸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그것의 기쁨만을 위해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가야할 방향을 알고 다루어야 한다. 몸이 주가 되어서는 안되며, 통로라는 관점에서 바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도록 정결하게, 절제하며, 지키고, 가꾸고,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육의 기쁨이 주가 되고 몸이 목적이 되어버린 삶을 위해 값으로 산 존재가 아니다.

가장 비싼 대가로 되찾아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며, 죄의 통로로 내어주어서도 안된다.

몸을 통해 사랑하고, 인내하고, 순종하며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빛의 통로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고린도전서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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