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란 죄는 덮지 않지만 사람은 버리지 않는 것

by 해보름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용서와 희생일까?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은 각각 농사를 짓는 자, 양을 치는 자였다.
그들은 각자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호의로 보셨으나 가인의 것은 그렇지 않으셨다. 그 일로 가인은 분노와 질투를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만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 가인에게 저주를 내리신다.
그는 땅에서 떠돌아다니는 자가 될 것이라 하신다.
그러자 가인은 자신의 죄벌이 너무 크다며,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한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렇지 아니하리라.”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게 될 것이라 하시며, 그에게 표를 주신다.
<창세기 4장 15절>


그 표식은 낙인이 아니라 보호의 표였다.
가인은 분명 형제를 죽인 죄인이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다. 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나님은 그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두려움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벌의 선을 분명히 그으시되,
그 선 안에서는 보호하셨다.


벌은 주시되, 존재는 부정하지 않으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에덴동산에서 그들은 모든 나무의 열매들은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뱀의 꾀임에 넘어가 하와가 먼저 먹고, 아담도 그 열매를 먹게 된다.

두 사람은 두려워 숨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시며 물으신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


핑계와 책임 전가 끝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출산과 노동의 고통, 그리고 죽음을 맞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심판의 끝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창세기 3장 21절>


그는 죄를 덮지 않으신다.
책임을 물으신다.
그러나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


마음이 참으로 따뜻해졌다.
그는 우리를 정죄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닮아 있다.


부모가 죄 지은 아이를 벌할 수는 있어도 버리지는 않듯, 하나님도 죄를 지은 우리에게 벌은 주시되 관계를 끊지 않으신다. 죄를 직면하게 하시는 이유는, 다시 같은 길로 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가 죄 뒤에 숨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앞에 나와 정직하게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다.


공의를 지키시되, 동시에 자비로우신 분.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아이를 키우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아이의 잘못 앞에서 인격적으로 대했는가.
혹시 타인의 잘못 앞에서, 그 사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는가.


죄는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까지 미워해서는 안된다.

죄라는 이름으로 인격을 모독하지는 않았는지 묻게 된다.

“하나님이 자신을 다 둘 수 없으셔서 세상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하나님을 닮아가지 않고서는 온전히 해낼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셨듯,
죄를 분명히 짚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정직한 고백 앞에서는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가 아닐까?


잘못한 아이가 부모 앞에서 이런저런 핑계가 아닌, 그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하는 말 한마디면, 부모는 더 따져묻지 않는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그 말 한마디에 그의 죄는 벌하되 그를 사랑으로 품게 된다.


나 또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너의 잘못이 너의 정체성은 아니란다.”
“너의 행동은 옳지 않았지만, 엄마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단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은 분별 있는 사랑이다.
죄의 책임을 묻고, 벌을 주시되
정직하게 돌아오는 자에게는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사랑이다.


아이에게 정확하게 잘못을 알게하고, 스스로 직시하게 할 때에 건강한 관계가 성립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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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분명히 짚으시되, 사람은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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