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도 통하는 것은, 바로 진심

by 해보름

진심은 어디서든 통한다.

그것은 인간세계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통용된다.


진심이란 거짓 없는 마음이라는 뜻을 넘어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마음을 나누지 않고, 쪼개지 않고, 전부 드리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다른 사람의 말을 내 할 일을 하며 귓등으로 흘려듣지는 않는지,
선물이나 마음을 전할 때에도 ‘무슨 날이니까’, ‘해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형식만 남은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신앙의 자리에서도

온 마음이 아닌 몸만 그 자리에 두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진심이 없으면 그 행동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앙꼬 빠진 찐빵처럼 껍데기만 남은 행위일 뿐이다.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을 해내느라

정작 내 마음과 나 자신은 돌보지 못한 채

오늘 하루도 무엇 하나에 마음을 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는 멈추어 서서 돌아봐야 할 때이다.

내가 어디에, 무엇에, 그리고 누구에게

나의 온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지를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수고하되,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은 각각 농사하는 자와 양 치는 자였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다. 여호와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물은 호의로 바라보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힌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써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다. < 창세기 4:2~8 >"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아벨이 드린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은 최선과 처음 것, 가장 귀한 것의 상징이다.

그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기쁨으로 올려드렸다.

겉으로는 제물의 차이일 뿐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 마음과 태도의 차이이다.

의무와 형식으로 드렸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진심으로 그것을 올렸는가의 차이였던 것이다.


유교에서 드리는 제사에서도 중요한 것은 차려진 음식보다도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다.

형식보다 조상께 마음이 본질인 것이다.


가인의 제물은 드려지긴 했지만 중심이 빠져 있었고, 아벨의 제물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중략)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 사무엘상 16: 7 >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라. < 이사야 1:11, 16~17>”


드리기는 했지만 삶은 변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자식의 행실이 부모를 아프게 하면서 선물만 내민다면, 그 선물이 과연 부모에게 기쁨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로,

평소에 부모를 공경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른 행실을 갖고 살아간다면

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진심 어린 말 한마디만으로도 부모의 마음은 충분히 채워진다.


형식적인 ‘행위’보다,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 ‘감사’와 ‘신뢰’의 마음이 중심이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진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께까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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