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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Jul 17. 2023

We can't buy new YOU~!!!

실제같은 뉴질랜드 화재훈련

' 엥~~~~~ 엥~~~~~~~~ 엥~~~~~~~ '


수업시간이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처음 울릴 때는 학급의 아이들 중 반정도가 하던 일을 멈추고 '뭐지?' 하다가 두 번째 사이렌이 울리니 아이들이 웅성 웅성댄다. 그리고 세 번째 사이렌이 울리니 누군가가 소리친다.


 " Is this the fire alarm?"
 " We need to evacuate~!!."


 몇몇 아이들이 먼저 주선해서 나오고 그 사이 선생님도 함께 아이들과 나온다. '뭐지? 뭐야? 진짜 화재경보인 거야?'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선생님께 묻는다. 선생님도 어리둥절하시며 같이 나오신다. 아이들을 줄을 세워 운동장으로 나가니 이미 전 학년 아이들이 모두 나와서 앉아있었다.


 ' 아, 소방훈련이었구나.'


 그제야 나는 진짜 화재가 난 게 아니라 학교에서 실시하는 소방훈련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리얼하다고?'






오래돼서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의 초등학교 때를 되짚어보면 그때도 소방훈련이라는 걸 한 것 같은데 그때는 학교에 가면 '오늘은 소방훈련을 할 거예요.'라고 선생님이 미리 공지를 해주셨었다. 그래서 예정된 시간에 알람이 울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배운 대로 훈련에 참여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선생님도, 학생들도 그 누구도 오늘 소방훈련을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 주도하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거다. 학생들 사이에서 여러 번 사이렌이 울리니 이것은 화재경보라고 판단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자 다 같이 교실밖으로 나와 운동장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 당시는 처음이어서 나만 모르나 했는데, 후에 몇 번의 소방훈련 시에도 따로 교직원이나 선생님들에게 사전 고지를 해주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정말 리얼훈련이었다.)


 아이들이 반별로 학년별로 자리에 앉고 선생님과 함께 인원수를 파악하고 나니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도 다 나왔는지 확인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주목하게 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것은 화재훈련이야. 모두들 화재 알람소리를 듣고 자발적으로 교실밖으로 나온 것은 아주 잘했어."


 그러면서 화재 시 대피요령과 지진 시 대피요령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셨다.


" 지금처럼 사이렌이 길게 3번이 울리면 이것은 화재경보야. 화재 경보가 울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누군가가 답한다.


 " 밖으로 나와야 해요."
 " 그래, 맞아."
 " 밖으로 나올 때 무언가를 들고 나와야 하니?"


 이미 답을 아는듯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고 그중 한 명이 호명되어 이야기를 한다.


 " 아니요, 모든 것을 다 두고 몸만 나와야 해요."
 " 그렇지. 맞아."


 교장인 토니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아이들은 이미 일 년에 여러 차례 행해지는 소방훈련에 익숙해져 있는지 탈출요령과 방법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토니는 덧붙여 말했다.

 

 " 우리는 새 책상을 살 수도 있고, 새 가방을 살 수도 있고, 새 연필을 살 수도 있어. 그렇지만 새로운 너희들은 살 수가 없단다. 너희들이 제일 중요해. 그러니 화재경보가 울리면 다른 것은 모두 놔두고 너희들 우선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밖으로 나와야 한단다. 모두 알겠지?"


 "네!!"


아이들은 교장선생님 말을 경청했고 그로부터 몇 분 정도 실제 화재가 일어난 것처럼 잠시 더 밖에 대피해 있다 이제 교실로 모두 들어가도 좋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에 모든 학생들은 다시 교실로 복귀했다. 그렇게 깜짝 소방훈련은 끝이 났다.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일어난 소방훈련에도 멍했지만, 나는 마지막 교장선생님의 말이 교실에 가서까지 아니 집에 와서도 하루종일 머리에 맴돌았다.


 " We can buy new desks, we can buy new books and we can buy new pencils.


 but WE CAN'T BUY NEW YOU ~!!!!! "


 이렇게 안전교육을 하는 나라라니..


예정에도 없이 실제 상황인 것처럼 훈련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아이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너희들이 제일 중요하고 너희들은 다시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니 모든 것을 뒤로하고 너희들 우선으로 대피해야 한다.라고 교육을 하다니. 내가 그간 받아본 안전훈련 중에 가장 강력하게 와닿는 훈련이었다.


 이렇게 교육받고 훈련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커서 얼마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지 알까? 알게 모르게 이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는 자존감이 그들도 모르게 그들 안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단지 안전훈련일 뿐이었는데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자존감 훈련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이들이 실제 비상상황에서 어른들의 지시만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닌 자발적으로 허둥대지 않고 훈련받은 대로 행해서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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