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학교 오피스에는 근무하는 직원이 두 명이 있다. 둘 다 여자로 한 명은 키위(뉴질랜드 사람을 캐주얼하게 키위라고 부른다)로 전반적인 사무업무 및 수업 지원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인도인으로 학교 전반적인 재정과 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저번 글에서도 언급을 한 적이 있듯이) 뉴질랜드 학교에는 한국과 같은 교무실이 없어서 선생님들은 본인의 반에서 수업준비나 맡은 업무를 하고 수업에 필요한 stationary(문구류)들을 가지러 올 때 혹은 다른 학교 행정업무들을 보러 오피스에 들른다. 그리고 오피스는 교장실과 교감실 중간에 있어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수시로 들르시며 직원들과 학교 전반적인 업무에 관해 소통을 하는 공간이다. 선생님들 뿐 아니라 학생들도 몸이 아프다던지, 집에 연락을 해야 한다던지, 런치를 가져오지 않았다던지 등등 수업 관련 이외의 일들이 있을 때는 오피스를 찾고 여기 직원들이 그 일들을 처리해 주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오피스 직원인 케리와 쥴리는 학교 선생님들과 모든 학생들의 일처리를 도맡아 주는 어쩌면 학교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직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둘의 성향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케리는 항상 웃는 얼굴에 호탕한 스타일로 선생님과 학생들 누구나 즐겁게 맞아주고 인사해 주며 본인이 맡은 일도 불만 없이 즐겁게 해낸다. 아침에 학교에서 들어서며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항상 기분 좋게 먼저 인사를 건네주어 처음에 아직 어색하고 쭈뼛쭈뼛해있던 나도 그녀로 인해 자신감도 들고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이 생기곤 했다. 또 다른 직원인 쥴리는 (생각해 보니 그녀도 자주 웃긴 했지만) 얼굴표정이 심각해 보일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그녀가 웃음을 띠고 있을 때는 대개 학교일 때문이 아닌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들 때문이었는데 가령 본인 아들이 오늘 상을 받았다던지, 오늘 개인적으로 특별한 일이 있다던지, 본인이 입은 옷과 구두에 대해 다른 사람이 칭찬을 했을 때였다. 그녀는 총무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선생님들이 필요한 문구류들을 가지러 갈 때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학교자산인 그 물건들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선생님들이 필요하다는 만큼 넉넉하게 주지도 않고(넉넉히 있음에도) 없을 때는 결제를 받아 사도 되는데 돈이 없다면서 사지도 않아 선생님들의 불만을 많이 사고 있었다. (선생님들 중 한 명은 우리들끼리 있을 때에 그녀는 탐욕스러운 여자라면서 안 좋은 표현으로 greedy bitXX라고 그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선생님들 사이에서 좋은 평을 갖고 있지 않은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선생님들이 그녀에게 불만을 표하기는 해도 어쨌거나 그녀가 학교 회계, 재정 담당자였기에 뭐라고 크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교장인 토니가 이러한 그녀의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교장의 재치와 그가 사용한 영어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날은 나도 오피스에 일이 있어 그곳에 방문한 상태였고, 교장인 토니가 오피스에 와서 무언가 필요한 물품들을 쥴리에게 가져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선생님들한테 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에게도 한결같았던 쥴리는 그 물건이 많지 않아서 많이 가져가면 안 된다고 교장인 토니에게 명령조로 제지를 가했고, 그러자 토니는 옆에 있는 우리들을 의식해서 인지 얼굴에는 그만의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 Hey, Julie
I'm boss and You're bossy. "
bossy라는 표현을 찾아보면, '사장처럼 구는,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거들먹거리지 마, 우두머리 행세하지 마.'라고 이야기할 때는 'Don't be bossy!'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는 길게 주절주절 그녀의 일처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보스는 난데 네가 우두머리행세를 하네.'라는 단 한 문장의 말로 그녀에게 나름의 일침을 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말하는 그의 말투와 특유의 자상하면서 무게 있는 리더로서의 아우라 때문인지(나는 그를 보면서 참으로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리더다운 리더라고 생각해 왔다.) 무언가 대놓고 이야기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그의 뛰어난 재치에 '와~ 대단하다. 내가 교장이라면 보스인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직원에게 과연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그의 재치와 위트 그러면서도 해야 할 말을 하는 그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뜻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나 외국에서 내가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는 나에게 낯선 단어였던 bossy라는 단어를 (실제 원어민들은 쉽게 명사에 y를 붙여서 만든 형용사를 굉장히 많이 쓴다.) 나의 머릿속에 제대로 저 문장이 통째로 각인되어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절대 까먹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