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직감'을 따르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이는 누구인가? 우주적인 믿음의 근거가 되는 본래의 '자신'은 누구인가?
과학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저 별의 본질과 힘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삶의 근원이자 동시에 재능의 본질로 이끌고 간다. 그것은 우리가 '자발성' 또는 '본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으뜸가는 지혜를 '직감'이라고 표현한다. 행동과 생각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 인간에게 지혜를 주는 영감의 원천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정의나 진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단지 빛이 우리를 통과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만약 그 빛이 어디에서 오느냐고 묻는다면, 또 만물의 근원인 그 영혼을 들추어내고자 애쓴다면, 모든 철학은 길을 잃은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현존 presence 또는 부재 absence는 모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 에머슨,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Self-reliance) -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에서 '우리의 삶의 근원이자 재능의 본질'인 우리 안에 있는 '직감'이 밖에서 찾는 철학보다도 더 고귀하고 더 위대한 것이라 말한다. 다른 사람,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구하고 따르기보다 변덕스럽지 않고 운명적이며 하늘의 태양만큼이나 확실한 내 안의 힘, 내 안의 직관, 내 안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고, 진리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기에 가장 고귀한 마음으로 초월적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고귀한 것이고 초월적인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예쁘다, 멋지다.'라는 말은 사용해도 '고귀하다, 위대하다, 초월적이다.'라는 말은 사용하는 적이 있을까? 그 뜻을 사전적으로는 안다 하더라도 가슴깊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느낄 수는 있을까? 살면서 저런 단어들을 가슴에 새기고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는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을 이야기하며 그에 따르는 삶이 고귀하고, 위대하고 그러한 우리의 운명을 초월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고귀한 것은 분명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 안에 '훌륭하고 귀중한' 것을 두고 왜 밖에서 길을 찾으려 하고 밖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듯,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내 안에 고요하고 침전하여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갖지 않은 채 그저 눈을 떠서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좇으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아침에 출근하기 전 세수를 하고 얼굴이 깨끗한지 뭐가 묻은 것은 없는지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밖으로 향한 눈을 내 안으로 돌려 내 안의 나 또한 한 번 바라보자. 조용한 시간에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오롯이 나 자신에게 눈을 돌려보는 것이다. '그 안에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이다. 그런 시간을 매일 하루가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갖고 거기에 위대하고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 한 구절까지 겸해져 나의 내면이 채워진다면 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고귀한 하루를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타인의 목소리, 사회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아닌 나 자신이 나에게 말하는 나만의 소리, 나의 내면의 소리 즉 직감에 귀 기울여 그것에 따르는 하루를 살아야 한다. 깨어있는 순간은 영혼의 현존이고, 그렇지 않은 순간은 영혼의 부재이기에 우리가 매일 스스로 깨어있는 삶을 산다면 영혼의 존재를 굳이 밝혀내려는 철학은 쓸모없게 되고 길을 잃을 것이다. 매일 새벽, 고요한 시간에 나와 마주하고 내 안의 나와 교감하며 나의 본성을 발견하고, 그 본성에 따르는 하루하루를 살았을 때 나의 하루는 고귀하고, 맑고 나의 혼이 담기는 하루가 될 것이다. 나의 직관에 나의 목소리에 따르는 삶을 산다면,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하지 않아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