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풍요를 깨달아라.
오늘 독서토론의 시작은 미O 선생님이 나눠주신 귀곡자의 양지술로 시작되었다.
"심기를 하나로 하면 욕망이 틈이 없이 상승하고, 욕망의 상승하면 의지가 쇠하지 않고, 의지가 쇠하지 않으면 사리에 통달한다."는 구절이었다.
'심기를 하나로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가고자 하는 하나의 길에 오로지 나의 모든 심기를 쏟는 것이다.
무언가 뚜렷한 나만의 길, 나만의 일이 있다면 우리는 흔들릴 것이 없다. 의지도 그 어떤 판단도 필요없다. 오로지 그것에 집중하여 정진해 나가면 된다.
이것은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에머슨의 '자기 신뢰'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나와 있었다.
" 모든 것은 하나로 모아진다. 방황하지 말고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집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 신성한 사실을 단순하게 선언함으로써 사람들, 책, 관습과 같이 우리를 어지럽히는 무리를 놀라게 하라. 신이 여기 우리 안에 있으니 침입자들에게는 신발을 벗으라고 명하라. 우리의 단순함이 그들을 심판하게 하라. 자신의 법칙을 따르는 유순한 마음으로 자연이나 행운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우리의 타고난 풍요를 깨닫도록 하라."
그도 방황하지 말고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집에 머물며 신성한 사실을 단순하게 선언하고 우리의 단순함이 우리를 방해하는 침입자들을 심판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는 내 안에 있는 나의 본능, 나의 신성함을 단순하게 따르라고 말한다. '무엇이 신성한 사실일까?' 내 안에 나의 직감이 옳다고 말하는 것, 나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사람들은 자신 안의 넓은 바다와 소통하지 않고 그 대신 다른 사람의 물병에 든 물 한 컵을 구걸하기 위해 바다를 건넌다고 말하며, 나 자신과 소통하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래, 우리 안에는 거대하고 넓은 파도가 있구나, 이미 풍요를 갖고 있구나. 그것을 모른채, 알려고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물병에 든 물 한 컵을 구걸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수고로움은 너무나 당연하게 행하고 있구나.'
얼마나 큰 모순을 우리는 행하고 있는 것인가? 얼마나 어리석게 행동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이러한 행동들을 우리는 살면서 의식하지 못한채 많이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옷장에 옷이 그득한데도 옷가게에서 아무렇지 않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옷을 집어들고,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 가득해 넘쳐나는 데도 밖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을 행하고,
이미 사랑으로 맺은 소중한 나의 인생의 반려자가 집에 있음에도 다른 이성에게 눈이 돌아가 그 사람의 환심을 얻으려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이 충분하여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이 부러워 그것을 갖고자 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풍요를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무언가의 부족과 결여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왜 그래야 할까?
밖으로 난 나의 눈을 내 안으로 돌려 나를 바라보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안의 신성한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으면 나 자체로 풍요롭다는 것을 알게 될텐데. 왜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내 안에 풍요와 우주를 지닌 채 부족감과 결여감, 그로 인한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까?
단순하게 산다는 것,
내 본성이 말하는, 내 안의 신성한 내가 옳다고 말하는 내가 해야할 것, 내가 가야할 길에만 집중하면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다른 누구가 행한 것보다도 위대하고, 가치있으며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조용한 시간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내 안의 나와 소통하자. 하루 시작 전 이러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내 안의 거대한 바다, 거대한 우주와 매일같이 소통해 나간다면 외부의 그 어떤 무엇도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며, 외부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만의 하루, 나만의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