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짧은 예고편 만으로 엄청난 기대를 주었던, ‘요리의 과학’ e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요리는 과학이다.
빌려 보았거나 사보려고 마음먹은 요리책의 저자들이 나와서 요리를 한다. 책으로 보았던 그들의 요리하는 모습과 이야기들은 생동감과 섬세한 힘이 있었다. ‘오호’ 그렇군 하며 페이지를 넘겼다면 ‘우아 끝내준다!’ 표현이 절로 나오는 장면들이었다.
더 푸드 랩 | J. 캔리 로페즈-알트
부엌의 화학자 | 라파엘 오몽
튀김의 기술 | 콘도 후미오
음식과 요리 | 해럴드 맥기
마시모 보투라 / 호안 로카 / 애르비 티스 / 안도나 루이스 / 알랭 파사르 / 로즈디 로카 / 오리올 카스트로
: 예고편 목록 참조
'요리의 과학'이라는 제목과 4부의 목차, 예고편을 보면 어느 정도는 어떻게 진행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불, 힘, 균, 맛으로 나누어 불을 이용한 요리의 시작부터 글루텐, 분자요리, 발효식품, 맛과 냄새, 새로운 환경을 대비한 연구로 이어진다. 1부가 끝나갈 즈음에는 이 이야기들이 어떤 방향으로 큰 틀을 만들며 진행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진화입니다.' 진행자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님 말투를 따라 해 보았다.
‘요리는 인간 진화의 핵심입니다.’ 불의 발견과 요리하는 인간. 에너지 흡수율 높은 익힌 음식을 먹고, 소화하고 남은 에너지를 뇌로 보내 쓴다. 생명활동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단맛을 좋아하고 쓴맛을 민감하게 알고, 신맛을 이용한다.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자연 재료인 곤충 요리과 미래의 식량에 연결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효모, 균과 함께하며 그들을 이용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주의 연장, 수많은 별들 중에서 지구의 환경에서 나고 살아가는, 유일한 요리하는 존재로 '인간'의 이야기와 계속되는 진화와 적응, 대응해가며 만든 문화와 노력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은,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나온 것을 의미한다.*
예고편 첫 장면의 질문으로 등장한다.
요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불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도구
힘 자연물을 재창조하는 힘
균 다른 존재와 공존하는 방법
맛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이 네 가지는 같은 시작과 원리이지만, 환경에 따라 다른 문화로 발전했다. 각자의 문화 안에서 살아왔고 생존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검증되지 않은 이라고 해도 될까, 음식에 대한 거부감, 역겨움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또한 적응하며 살아왔다. 역겨움이란 무언가를 먹으면 안 된다는 신체 반응이자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한다. 혐오감은 인간이 만들어낸 감정이고, 역겨움을 극복하는, 우리가 이미 극복해오고 있는 방법, 그것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한번 더 권한다. ‘한번 더 먹어 보세요.’
중간중간 유용한 설명들이 나온다. 고기의 구조, 스테이크를 굽는다는 것, 레스팅, 수비드, 리버스 시어링 스테이크, 재료들이 익는 온도, 튀김, 발효, 감칠맛 등. 그중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풍미를 더해주는 마이야르 반응이 있다. 140도 이상의 고온에서 단백질과 당이 결합할 때 일어나는 매우 복잡한 과정. 표면이 갈색으로 변한다, 이 색을 보고 풍미를 느끼면 우리는 맛있다는 것을 안다. '마이야르 반응은 아주 아주 복잡합니다.'
J. 캔리 로페즈-알트
“우리가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 내부에는 원초적인 무언가가 있어요. 맛있다는 감각은 요리된, 갈색으로 익은 음식에 연결된 겁니다.”
효모와 발효, 조금은 생소한 다른 지역의 발효음식들. 콜라툴라/느억맘, 지역별 치즈, 콜라텔로, 프로슈토 등.
요리 장인들이 마블 영화 속 영웅들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등장한다. 툭툭, 숙련된 솜씨로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요리한다. 오랜 시간 하는 일에 집중하며 고민했던 생각을 꺼내놓는다. 그 말들은 내어 놓는 요리만큼 솔직하고 힘이 있다. 미슐랭 스타 요리사들이 조용하게 등장한다. 그들의 요리는 생각한 요리를, 맛을 만들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디자인, 시간의 결과이다.
에반 펀키
“파스타는 제 인생입니다. 파스타는 조각입니다. 하지만 또한 건축이기도 하죠. 파스타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알랭 파사르
“요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는 불에 익히는 것입니다.”
다리오 체키니
“모든 사회에서 불은 마을의 중심, 집의 중심에 있었죠.”
식구가 줄고 식습관이 바뀌어 부엌이 축소되더라도, 집에서 부엌은 하루 세 번 생활의 중심이 된다.
프랑스 / 몽고 / 이탈리아 / 터키 / 태국 / 미국 / 중국 / 베트남 / 싱가포르 / 일본 / 한국
주제에 맞춰 지역의 요리가 등장한다.
‘지역의 특성이 글루텐을 만나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했습니다.’
실비 드벨마니에르
"빵은 프랑스인들의 주식이에요. 우리는 빵 없이 식사하지 않아요. 빵은 인생입니다. 또한 빵은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장 여우더
"우육면 한 그릇이 란저우의 문화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중 발효는 조금 독특하고 어려웠다. 효모가 당분을 먹이 삼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알코올 성분을 남긴다. 그 알코올은 효모가 당분을 독차지하기 위해 만드는 것으로, 다른 것들은 견디지 못한다.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화학무기이다. 다른 미생물들이 양분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 그 알코올로 소독제를 만들기도 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
"발효는 생명을 부여하는 것, 유기체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들이는 과정입니다."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도 생선, 콩, 우유 등을 이용해 지역별로 발전했는데, 각자 문화 안의 발효음식을 즐기지만, 다른 지역의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발효는 익숙하지만 낯설기도 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발효와 부패의 아주 미세한 차이에 따른 방어기제 때문이다.
3편에 나오는 요리사들은 공생하는 작은 존재들에게 일 할 수 있는 집과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조심하고 세심하게 지켜본다.
마시모 보투라
그의 요리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의 다섯 가지 숙성 단계’에 대하여,
“두 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하나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다른 하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이 음식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술적인 연습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시간의 느린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영상이 차분하게 따라가기 쉽게 되어있다. 요리의 맛과 향을 전달할 수 없기에, 소리와 감각적인 영상을 한껏 살려 보여준다. 게다가 요리사들은 요리의 소리를 듣는다. 고기가 익는 순간 육즙이 빠져나오며 불에 닿아 치-익 날아가는 소리, 튀김 재료의 속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콘도 후미오
"눈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소리를 통해서 안까지 꿰뚫어 보는 거예요. 물기의 소리가 슈- 하고 크게 들려요. 껍질의 지방이 찢어지는 소리, 속의 수분이 흩날리는 소리. 소리가 끊기는 순간 다 익은 거예요."
큰 틀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역사학자, 인류학자, 과학자이다.
단맛 / 짠맛 / 쓴맛 / 신맛 / 감칠맛 , 새로운 여섯 번째 맛은 무엇일까?
맛과 인류의 미래 식량 맛에 대한, 미래에 대한 대응 실험 등 어디선가 준비하는 또 다른 진화의 장면이다.
2부 ‘힘’ 편의 요리 장면을 보고 그 날 바로 활용한 것이 있었다. ‘튀김의 기술’의 저자 콘도 요시오가 튀김 하는 장면이 잠시 스쳐간다. 책의 장면으로 보았던 튀김의 순간은 재빠르고 힘이 있다. 기름솥에 온도를 맞추고 묽은 반죽 안의 재료를 건져 기름에 넣는다. 긴 젓가락으로 휙휙휙 저어 재료들을 모은다.
때마침 나온 것이 ‘당근 튀김’이어서 해보았다. 당근을 얇게 채 썰고, 물과 밀가루, 소금으로 간한 묽은 반죽에 넣고 잘 섞는다. 반죽의 묽기는 화면에서도 알 수 있는데, 젓가락으로 들었을 때 툭툭 떨어질 정도의 묽기이다. 조심스럽게 재료에 올려 담는다. 그래서 기름에 넣었을 때 당근 같이 채 썰어진 것들은 하나하나가 솥 가득 간격을 벌여 놓일 수 있는 것 같다. ‘튀김의 기술’에서는 생들기름을 배합하여 썼는데, 무난하게 식용유와 올리브 오일을 약간 더하여 썼다. 당근채를 기름에 풀어놓아 골고루 튀겨지게 하다가, 이때다 싶으면 젓가랏으로 휘릭휘릭.. 영상처럼 잘되지는 않았지만, 뭉쳐진 부분 없이 골고루 바삭하게 잘 튀겨졌다.
영상은 ebs에서 구독을 하고 볼 수 있다. 구독 시스템으로 되어있어서 정기구독을 하고, 이후에 해지의 과정을 남겨놓아야 해서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처음 본 다큐프라임,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음식문화를 대하는 시선을 넓혀주었다. 나오는 분들의 얘기들이 흥미로워서 많이 정리해 두었다.
예전에 서점에서 ebs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와있는 것을 펼쳐 보고, 영상을 책으로 만든 것이 유용한가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책장의 주제를 넘기는 것 같이 영상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부 ‘불’ 편에서는 복사, 전도, 대류로 장을 바꾸며 이어진다.
쉽게 영상 속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냉장고의 김장김치를 꺼내 보기 좋게 썰어 담고 된장찌개를 끓여 먹어야겠다.
보고 듣는 음식도 즐겁다.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