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동네를 걷다 보면 풍경 속에 여러 가지 의도가 앞뒤를 다투며 펼쳐지는 장면을 만난다. 보여주려는 곳과 보이지 않겠다는 틈 깊숙한 곳에서 조용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우연일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사람이 떠나고 공간을 잃은 집이 거리에 나앉았다. 누군가의 가십거리가 된, 한때 은밀했던 이야기를 무심하게 들은 듯, 스쳐가는 장식이 되었다.
어떤 마지막 순간과 마주칠 때도 있다. 어제까지도 누군가의 집이었던, 파스텔톤 벽지의 아이방과 간식이 채워졌던 냉장고가, 콘크리트 조각 휘어진 철근과 뒤섞여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곧 점심시간이 지나면.
안과 밖을 대하는 방식을 남기고 집이 사라졌다. 경계가 사라지고 드러난다. 한 동안은 이곳을 찾는 이가 없을 것이므로 이 경계는 유효하다. 그 집이 있던 자리.
도시는 비어졌지만, 남겨졌다. 도시는 다시 채워졌지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