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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Aug 22. 2022

통영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것 들

 간창골, 좁은 골목을 걷다가 삼거리에서 아기를 업은 어르신과 그 아래 분주하게 주위를 맴돌며 우리를 관찰하는 나이 많은 시추 한마리와 마주쳤다. 시선이 향한 곳을 슬쩍 보니 모퉁이 낮은 푸른 골판넬 지붕 위에 하얀 밥그릇이 올려져 있고, 작은 고양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어미 고양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잘 먹어라' 하셨고, 거리를 두고 서서 모두가 멈춰 지켜보았다. '잘 먹는군' 하며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통영을 여행한 때는, 사회초년생 시절 혼자 떠난 휴가였다. 운전면허증 따기 전에 지인에게 40만 원을 주고 사서 주차장에 보관했던 차를 가지고 떠난 자동차 여행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지도의 길을 찾고, 주요 분기점을 순서대로 적어서 잘 보이는 곳에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고 출발했다. 통영대전고속도로는 지리산을 지나가기 때문에 터널을 지날 때마다 바뀌는 풍경들을 힘든 줄 모르고, 지루 할 틈 없이 즐겼다. 먹구름에 비도 쏟아져서 운전을 신경 써야 했지만, 운치 있었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달린 고속도로 끝에 바다가 나타났다.


 이번 우리의 휴가는 차를 가져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서울역에서 제일 긴 KTX 노선 진주역에 내려, 진주 터미널에서 통영 터미널로, 통영 터미널에서 중앙시장으로 갔다.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는 얘기하자면 길기 때문에 여기서 멈춰야겠다. 진주 남강과 고성 바닷가 마을들을 구경하며 통영 터미널에 도착했고, 통영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무심하게 창 밖을 구경하던 나는 이 버스를 타고 30분 남짓한 거리에 가서 도착하는 곳이 나의 목적지라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가 이어졌고, 브랜드 쇼핑 거리와 대형마트, 극장들을 지나며 오른쪽에, 왼쪽에 바다가 보였다. 토성고개 오르막을 갸우뚱 넘자마자 통영이 나타났다. 보지 못했었던 다른 면이었고, 어쩌면 이곳이 일상이었다. 이런 접근은 조금 어색해졌다.

 

 통영 시내에서도 차를 빌리지 않고 걸어 다녔다. 비가 퍼붓는 밤, 비어있는 가게들 사이에 혼자 밝혀 있는 명성레코드 음악이 흘러나오는 초정 거리를 지나, 가는 사람 없어 쓸쓸하게 느껴지는 청마거리를 따라 숙소로 돌아가다가 수군 통제영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비바람에 깃대들이 펄럭이고 곳곳에 불이 밝혀있었다. 출발하기 전 보았던 영화 '한산'의 영향으로, 고요하고 깊은 밤 홀로 고심을 끝내고 붓을 들고 학익진의 도면을 그리기 시작하는 영화 속 이순신 장군 모습을 떠올렸다. 이것 또한 조금 어색해졌다.


 수군 통제영 주변을 걸으면 이정표처럼 동포루, 서포루, 북포루를 볼 수 있다. 특히 밤에 강구안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 근처에서 바라보면 수군 통제영 중심으로 어두운 산 능선 위에서 달 빛에 그림자 진 세 포루들을 볼 수 있다. 해군기지라는 것이 실감 난다.


 중앙시장, 서호시장에 가까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동피랑, 동포루이고, 가장 높은 곳이 북포루다. 북포루는 세병관 뒤 여항산 정상에 있고, 문화빌라에서 출발하면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지도상 15분) 산을 올라가야 해서 가보지는 않았는데, 전망이 더욱 좋다고 한다. 동피랑은 절대 관광구역에 들어가 있어서 혼잡하다. 시장에서 시작해서 편하게 가 볼 수 있고, 높은 곳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쉴 수 있는 카페가 많지만, 또 그런 것들 때문에 의미 없어 보이는 소리와 장식들이 많아서 피로하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서피랑이 생활권역에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한적했다. 아침에 서피랑 가는 길을 다니면 햇빛 속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풀을 베며 마을을 가꾸는 어르신들과 마주할 수 있다. 저녁은 일찍 진다. 동네는 조용하다.


서포루 가는 길에서 본 수군통제영 일대와 북포루

 

 우리 숙소는 ‘서피랑 와옥’으로 박경리 소설 속 무대이다. 숙소 자체는 한옥의 구성을 잃었지만, 위치가 좋았다. 숙소에서 나갈 때나 돌아올 때 오르내리는 골목에 박경리 작가의 흔적이 있었고, 골목을 벗어나면 충렬사, 명정, 수군 통제영 등 유적지들이 이어졌다. 길가에 동네 청년들의 공간이 있고, 작은 소품점들과 카페도 있다. 미술도 있고 음악도 있고 글도 있고, 공예와 무예도 있는 곳이다. 이런 것들이 의외의 장소에 있다 해도 납득할만한 곳이 통영이지만 지금은 조금 연약해 보인다, 어지간한 곳은 토핑 꿀빵들이 점령했다.


  깨끗한 아침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서서 충렬사로 갔다.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일렬로 나부끼는 깃대들을 지나 외삼문, 내삼문을 넘어 사당으로 간다. 사당 뒤편 대나무 단이 흔들리는 시원한 소리가 가득하다. 비가 그치고  햇살과 구름이 번갈아 비춘다. 작지만 단정하고, 낮은 벽으로 둘러져 안정되고, 바다로 시선이 트여 있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공간을 위해,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만들었을 것이다.


담넘어 보이는 강구안
내삼문 안쪽에서


 충렬사에서 나와 다시 골목길을 둘러 다니며, 수군 통제영으로 간다. 세병관 거대 현판이 보인다. 마루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바다에 면한 조선소, 동네들을 내다보고  거대한 기둥, 보를 구경한다. 어디서 이 큰 나무들을 구해 어떻게 옮기고 다듬고 세웠을까, 대단하다. 바다에서 배를 만드는 기술과 갖추어진 기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기계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구조용 집성목을 구조 계산하고 이동까지 고려한 최대 가능 부재 사이즈를 고려해서 부재 단위를 나눈 후, CNC 머신으로 다듬은 후 이음 부분을 철로 구조보강을 하고.. 거대 공간을 만들 것이다, 여수 진남관은 해체 복원 작업 중이라고 한다.


 휴가 오기 전에 영화 '한산'을 보았는데, 나는 영화에서 일관되게 '설계가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설계가 중요하다. 거북선 설계도와 학익진 도면, 그리고 생각하고 결국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이 완성되길 기다린다.  


세병관 마루에 앉아서


 바다를 보기 위해서  산양도로를 달리는 대신 여객터미널에서 비진도로 가는 배를 탔다. 배가 출발하면 거제도 사이 견내량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고, 통영과 한산도 사이 한려해상 국립공원 바다를 지나 비진도에 도착한다. 비진도에는 배를 내리는 곳이 두 곳인데, 먼저 내리는 곳은 원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내항이고,  섬의 잘록한 허리 부분에 만들어진 해변은 외항에서 내리면 된다.

 배가 내항에 점점 가까워지면 깊은 빛깔 바다와 멀리 아담한 마을의 모습에 편안해진다. 비진도를 트레킹 하는 코스도 많은 분들이 다닌다고 하는데, 그것도 좋을 것 같다, 궁금하다. 여유가 있다면 내항에서 내려 걷고 싶었다.

 비진도 해수욕장은 햇살이 반짝이고, 물이 깊다. 둥둥 떠있기 제격이다.

비진도 내항
비진도 해수욕장

 

 예전 혼자 여행을 왔을 때 속소 앞에 있는 슈퍼에서 매일 맥주 한 캔을 잡아 숙소로 들어갔었다. 여행 왔냐고 아는 체를 해주시던 주인 아주머님께서 오늘은 어디 다녀왔냐고 물으셨다. '배를 타고 소매물도에 다녀왔어요.' 했더니 좋았겠다고 하시며, '나는 이렇게 바다 앞에서 오래 살았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라고 짧게 말씀하셨다. 흠. 잠시 말을 잊은 순간이다. 지금은 다녀오셨겠지!


  배에서 내리고 충무 김밥을 잡아 숙소로 돌아왔다. 둘둘 말려진 것들을 모두 풀어 펼쳐놓고 한입 크기로 말려진 것들을 꼬지에 쿡 찍어 먹는다. 이건 정말 배에서 먹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시장에서 들른 횟집에서 가장 흥미롭게 먹은 것은 반찬으로 나온 잔멸치였다. 양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빛이 짙고, 통통하고 멸치맛이 진했다. 보통의 쪄내어 만든 잔멸치가 아니고, 잘 말린 반건조 잔멸치 같은 느낌이랄까. 아직 정체를 모르겠다. 해물 한상을 먹을 수 있는 곳들이 많았지만, 복잡한 곳은 피하고 싶었고, 예상외로 우리가 맛있고 편하게 먹은 것은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하게 들어간 서울 삼겹살 집이었다. 꿀빵보다는 숙소 앞 충렬 도너츠 팥도나스였고, 생각지 않게 편의점에서 발견하고 숙소에서 마신 이순신 스타우트, 동피랑 맥주였다.  사실 내가 통영에서 먹어보고 싶은 것들은 이순신 장군님이 잡쉈다는 밥상들이다. 사진으로 찾아보았다. 영양을 골고루 갖추고, 담백하고 바다가 느껴지는 맛.



  낮에 바다에 있지 않으면 뜨거운 햇빛에 힘들기도 하다. 그럴 때 시내에서 갈만한 곳은 통영시립박물관이다. 서호 시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나타난다. 1943년 통영군청으로 지어졌던 옛 건물 쓰고 있는 아담한 박물관인데, 통제영 자료들, 공예품들, 전혁림의 그림 등 통영을 아우르며 볼 수 있는 곳으로 좋았다. 충렬사 앞 명정에서 하얀 옷을 입고 빨래를 너는 여인들의 흑백사진과 ‘명정동’ 김춘수 시인의 시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진주박물관도 들렀는데, 통영으로부터 전시가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진주박물관 자체의 매력도 좋았어서, 그 여세를 이어 서울에 와서도 틈틈이 박물관 여행을 이어갔다.


  저녁을 먹고 해 가졌을 때, 통제영 옆 동네 카페에 갔다. 주민이신지 사장님과 아는 체를 하는 분들도 계시고, 너무나 즐겁게 이자리 저자리 옮겨가며 사진을 남기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분이 엄청 상기되고 과장된 걸음으로 카운터 자리에 앉아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주문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쩐지 우리 옆 창가 자리로 옮기고는 통화를 하시는 것 같더니, 우리에게 아니 정확하게는 j에게 인사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아, 네 누구신지..' '00 카페 자주 오셨죠? 저 거기서 일했었습니다.' 울 동네에서 종종 가던 커피집 직원분을 만났다. 고향이 통영이고 내려오셨다고 한다.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고, 의외의 만남에 우리도 너무 즐거웠다. '저희는 여행을 왔습니다.' 사실 카페에서 손님으로 가는 우리는 종종 마스크를 벗고 있지만, 직원분들은 계속 마스크를 쓰고 계시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실을 알아차렸다. 뜻밖에 우리가 다음에라도 통영에 가면 안부가 궁금할 것 같다.


 통영은 재미있는 곳이다. 특히 수군 통제영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겹겹이 쌓인 시간과 사건들이 얽혀 퍼저나간다. 매표소에서 영화 '한산' 촬영지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 그럼 그 영화를 어디 다른 데서 찍는답니까? ' 이건 물론 속으로 혼자 말한 것이다. 많은 장면들이 CG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통영, 비진도


 여느 때보다 짧지만, 우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휴가를 다녀왔다. 나도 이제는 이런 전환에 익숙해졌고, 여름을 즐기는 것은 그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통영에 언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잘 살펴보아야겠다. 어떤 모습들이 눈에 띄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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