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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Mar 06. 2023

육전

한참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저녁은 간단하게 집에서 있는 재료로 먹고 싶었다. 주요 메뉴는 잔멸치밥에 무나물 그리고 보리차. 얼마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식단인가. 쌀을 씻어 안치고 잔멸치를 한 움큼 쥐어 얹어 밥을 하고, 무를 툼툼 썰고 볶아 나물을 만들고 보리차와 함께 차분하게 먹어야지.


"고기가 없잖아. 나는 큰 고기가 먹고 싶다. 육전 어때?"


고기를 잡으러 집을 나섰다.

"육전 하려고 하는데 홍두깨살 300g 얇게 썰어 주시겠어요?"


고깃집에서


(육전에 홍두깨라고? 애송이 같은 선택이군.)


평소 '두껍게 썰어주세요.'를 외치는 나에게 맛있는 삼겹살을 1.5cm  두께로 썰어주시는 사장님은 탄식을 감추고 '그런 어설픈 선택을 하지 말고 나만 믿어라.'라는 단호한 표정으로 "훨씬 맛있는 부위로 드릴게요."라고 말씀하신 후 재빠른 걸음걸이로 냉장칸 문을 열고 들어가시더니 포장된 고기를 새로 꺼내오셨다. 커팅기 두께를 조정하신 후 '시잉' 한 겹 썰어내 보여주셨다. "두께는 이 정도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이게 훨씬 맛있는 부위예요."


달걀물에 소금, 간장을 넣고 밀가루 얇게 묻힌 고기를 적셔서 올리브오일 두른 팬에 올렸다. 너무 약하지 않게 노릇노릇 해지는 불의 단계를 조절하면서 전을 구웠다.


"맛있네. 그런데, 그래서 이게 무슨 부위라는 거야?"

"물어보지는 않았다."

"이그, 물어봤어야지."


이건 사장님과 나의 신뢰 문제여서 나는 그 자리에서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가서 물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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