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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Jul 05. 2023

철 지난 이야기

마늘

 며칠 전에는 집 앞 시장에서 노란 고무줄에 짧게 묶인 통마늘 다발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보통 마늘 철에 그 정도의 햇마늘을 기분 좋게 사곤 했는데, 이번에는 때가 좀 지났지만 지금도 괜찮다. 이건 매해 그즈음 꺼내보는 사진 속 풍경 같은 거니까. 겉껍질은 바짝 말라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하게 싱싱하고 아삭거리는 싸한 마늘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마늘을 살 때는 꼭 그 거리와 그녀들을 떠올린다.


 창녕에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가끔 회의를 갈 때가 있었다. 그날은 근처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서울로 출발하기로 했고 소장님께서 안내해 주신 시장에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5월의 어느 날로 매우 건조했고 주차를 하고 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뿌옇게 모래먼지로 가득했다. 오래된 재래식 시장이었고 포장되지 않은 입구 앞 공터에 큰 버드나무의 가지들이 먼지 속에서 흔들거렸다. 반대편 길 가에는 문화재 발굴 현장이 있었다. 경사진 곳이어서 펜스 넘어가 훤히 보였다. 걷어진 흙더미 사이의 몽롱한 대기 안에 사람들의 발굴작업이 한창이었다. 솔질에 기억의 모래는 하늘로 흩어졌다. 그리고 오랜 유물의 흔적처럼 키높이의 마늘 더미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갑자기 알록달록한 차양들이 드리우고, 작은 상점들이 모여 골목을 이룬 시장이 나타났다. 단을 높인 바닥에 짙은 나무로 짜인 여닫이 문이 설치된 곳이 많았다. 그곳은 그런 곳인 건지 약간 어둑한 실내를 만들었지만 그래서 먼지 없이 깨끗한 사막의 도시였다. 종종 저편에 출입구의 밝은 빛 너머로 초록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날 같이 간 동료들은 마늘을 한 첩씩 구입했다. 그게 내게는 그날의 이상함 중 하나였다. 그때까지 농산물을 산지에서, 나의 필요로 직접 사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모습이 참 생경했다. 내 살림을 하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렇게 현지에서 제철 식재료를 대량으로 사다니. 그 당시에는 스치며 지나간 사건이었는데, 요즘 마늘 철마다 드는 생각은, 그네들이 참 성숙하게 자기 생활을 만들고 가꾸고 있었구나라는 것이다, 요리하는.


 한 번쯤 마늘은 꼭 그곳에 가서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햇마늘 꾸러미를 살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다, 흙먼지 날리는 발굴현장과 쌓여있는 햇마늘 그리고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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