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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Aug 03. 2023

동네생활

이사

 요즘 꾀 오래 집 구경을 다녔는데, 비어있는 집 빼고는 모두 고양이나 강아지가 있었다. 이건 말로만 듣던 '나만 없어 고양이'랄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야옹 거리며 우리를 맞았다. 졸졸 따라다니며 우리를 관찰했다. 집들은 모두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폴짝 선반 위로 올라가 우리를 바라보기도 했다. '사람을 좋아합니다.' 강아지는 아이에게 안겨 멀리 보내졌다.


 이번에 본 집들은 우리의 보통 주거 현실을 적나라하게 맛보았다 할 만큼이 되었다. 어설픈 재료로 불법 증축된 곳도 있었고, 방 3개인데 한 칸 한 칸이 이불하나 필 정도인 곳도 있었다. 나갈 수 있는 발코니인데 노출방수재 그대로인 상태에 윗집의 우수드레인이 허공에 구조물처럼 달려 그 집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사방이 다른 건물로 막힌 곳도 있었다. 그런 집들은 아마도, 거래나 세입자 구하기에 분명 애를 먹을 것이고 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지칠 것이다. 엘리베이터와 공용공간의 냉방을 자랑하는 화려한 설비와 재료들의 신축빌라는 누군가의 막연한 희망에 들뜬 모습을 보는 것 마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아파트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j가 고집스럽게 버티어 금방 그만두었다.


 지금 이 집(고양이삼거리, 지금은 이사했습니다.)으로 이사오기 전에 우리는 호기롭게 제주도에서 살겠다며 집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말 목장이 있는 숲 인근의 집도 있었고, 바다 근처의 집도 보았다. 여행을 다니는 것과 살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은 확연하게 달랐다. 관광지, 혹은 너무 외진 마을이 아닌 살 집, 동네를 다니는 것은 또 다른 제주도를 알아가는 여행이었다. 집을 보러 가면 '지금은 어디 사세요?'라고 물으셔서 '서울입니다.' 하면, '저희는 왕십리에 살았었어요.' 하는 서울살이 대화가 이어졌다. 거의 마지막에 보러 갔던 곳에서는 야자수가 이어진 골목길에서 우리를 보고는 놀라 뛰처가는 꿩을 만나기도 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부동산 사장님은 그때, 그러니까 10여 년 즈음, 중국사람들이 집을 많이 보러 온다는 얘기도 했었다. 조금 더 확실하게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더라면 제주도에 살았을 수 도 있었겠지만, 인연이 없었고 조금의 우연이 더해져서 우리는 지금 동네로 오게 되었다.


  같은 기간에 일을 쉬고 있던, 학교 선배의 집 근처에 놀러 오게 되었는데, 저녁이었고 짧게 둘러본 것이지만 분위기가 좋았던 나는 j에게 같이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편한 카페도 찾고 맛있는 식당들도 찾아냈기 때문에 종종 놀러를 왔다가 이 동네에서도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사를 와버린 것이다. 그때 동네에 (지금은 없어진) 옹기박물관이 거기에 없었더라면 더 깊이 들어오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조금 더 조금 더 우리를 안내했다. 시선이 이끌리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면 원하는 것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동안 옹기박물관은 신축빌라가 되었고, 그 근처 피아노 선생님 단독주택까지 더해져서 다른 빌라들이 들어왔고, 모과나무집은 이미 빌라가 된 후였다. 학교 옆에서 첫 목련을 피우던, 오래되었지만 세련됨을 가지고 있던 연립단지는 재건축을 하였다. 어떤 곳은 9개의 건물동이 3x3 그리드에 법적간격을 유지하며 틈 없이 꽉 채워지기도 했고, 풍경뷰를 광고하는 빌라는 점점 앞으로 건물을 채우면서도 광고를 잊지 않았다. 오르막 지대의 작은 집들 사이 골목길은 단지공사를 하느라 통합되어 없어졌다.


 사실 이번에는 근처 다른 동네나 r의 학교 옆으로 갈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한참 집을 알아보았는데 이번에도 적당한 곳을 만나지 못했고 (또 한 번) 조금의 우연이 더해져서 우리는 (다시) 지금 동네로 오게 되었다. 그것은 적당한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즈음 되면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다리 위의 포장마차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대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는 한번 들어오면 떠날 수 없어.' 흠, 의미심장하다.


 집의 환경에 적응하고 곳곳을 살피며 다듬고 있다. 높은 지대여서 아래서 올라오는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의 기운이 낮에 바로 들어오고 있어서 낮 동안에는 북서쪽 부엌의 창을 많이 닫아두기로 했고, 차양설치계획을 하고 있다. 남동쪽 거실의 창에는 한지 두장을 길게 늘여 두었다. 가끔 바람에 부드럽게 펄럭인다.


 우리는 더운 여름날에 이사를 했다. 이사 날은 집을 보러다니기 전부터 r이 손 없는 날이라며 장난스레 잡아두었는데, 날짜가 맞춰지지 않으면 옮기려고 했지만, 신기하게 모든 것이 꼭 그날에 맞춰졌다. 아침에 소나기가 내려서 많은 분들이 이삿날 비 오면 부자 된다고 덕담을 해주셨는데, 무척이나 습하기도 한 강렬한 날이었다.


 조금 다름 장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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