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불볶음
r과 j는 바싹 구운 불고기를 좋아한다. 고기, 생선 굽기에 대해서는 보통 j가 담당이다. 우리의 원칙은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j는 불을 다루는 솜씨가 좋아서 참나무 장작으로 숯도 잘 만들어내고, 훈제도 근사하게 만든다. 본인이 더 선호하는 것은 직화인데 언젠가 겨울에는 예정 없이 시골집에 가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는 그 앞에 셋이 쪼그려 앉아서 고기를 한점씩 불에 구워 먹고 온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불고기 볶음을 요즘에는 어쩐지 내가 물려받아하고 있다. 양념된 소불고기를 물기가 가실 때까지 볶는다, 고기는 불과 어울려서 맛이 진해진다. 이렇게 먹을 때는 비록 날려 보냈지만, 수분과 담백함을 다시 가져와서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 되기 때문에 그때, 우선으로 필요한 것은 잘 지은 하얀 밥이고 그다음으로 내가 요즘에 생각한 것은 양파볶음이다.
양파를 채 썰고, 마른 팬을 센 불에서 달궈서 양파를 볶는다. 양파를 얇게 썰고, 볶을 때의 양이 많지 않아야 수분이 잘 날아간다. 겉이 수분이 날아간 상태가 되면 불을 끄고 접시에 담는다. 잘 볶아진 경우는 불맛이 살짝 감돌기도 한다. 그리고 고기를 볶아 옆에 소복하게 쌓고 함께 먹는다. 양파를 이렇게 볶으면 아삭함이 적당하게 살아있으면서 매운맛이 가시고 담백한 단맛을 가진 상태로의 부드러운 양파가 된다. 다른 채소인 상추쌈, 파채, 마늘도 떠올리지만, 문득 그들의 계절이 한 풀 꺾였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이 부스스 비가 오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감돌기 시작한 날에는 식탁에서도 '생'보다는 '구운' 그리고 '초록' 보다는 '갈색'이 어울린다. 해가 잘 드는 도로의 은행나무도 먼저 익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겨울을 예감하는 본능 같은 것일까, 포근함이 필요하다. 이 쎈불양파볶음은 긴장감 더해진 갈색의 양념불고기의 맛에 하얀 수분과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해서 고기의 진하고 짭조름한 양념 맛을 풀어낸다. 갈색으로 변한 양파들을 보니 멈추지 말고 볶고 볶아서 양파수프를 만들 날도 머지않았구나 생각이 든다.
* 양념불고기는 재워진 고기를 사가지고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