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삼거리 Oct 04. 2023

시금치


'한단에 7800원, 지금 시-금치입니까?'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몇 번 맛있게 먹었던 아욱이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보이질 알았고 대신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자 생각하고 시금치를 집었다. 카드 할인을 하면 3800원 정도라고 쓰여있어서 아니 시금치가 얼마인데 할인을 한다는 건가 싶어 원래 가격을 확인했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금치 한 단 기본 가격 7800원, 맙소사. 생각해 보니 한참 시금치는 사지 않고 있었다.


 지금 윗단락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니터 앞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시금치가 이렇게 비싸다는 것은 시금치가 제철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아니라면..) 제철이라는 것이 나의 해석상에 '제철인'의 통상 날씨, 때에 따른 '제철'이 있고 '제철 맞은'의 온실재배 채소들이 출하되어 제철을 맞은, 둘로 구분해 보아도 제철이 아닌 것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철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지금 시금치를 필요로 하는가, 추석을 맞은 우리는 잡채에도 넣어야 하고 삼색나물에도 넣어야 하기 때문이지. 시장에서 삼색나물 한팩을 샀는데 시금치가 들어간 것은 만오천원이었고, 다른 초록나물로 채워진 것은 만원이었다. 가격을 듣고 놀란 나에게 사장님은 '시금치가 비싸서요.'라고 얘기해 주셨다. 텃밭 달력으로 보면 지금은 시금치 파종 시기를 막 지나는 때이니 지금 시-금치는 추석을 위해 계획적으로 무더운 여름과 장마를 피해 보호받으며 자란 것들이어서 그를 위한 인공 제철을 유지하는 비용들이 포함된 것일 테다. 이렇게 시금치 사건으로 돌아보면 더욱 제철을 즐기는 것이 합리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우리는 잘 손질되어 있는 토란을 한 근 사서 돌아왔다. 어르신이 직접 손질해 주신 깔끔한 동태포도 사고 (이 동태포는 포의 두께가 얇고 가시도 없고 형태가 예쁘다는 만족스러운 특징이 있다.) 북적이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가방을 가득 채워 장을 보았다. 하루이틀 우리 식구 먹을 음식만 장보고, 별일 없이 메뉴변경 가능한 나의 물가는 이 정도인데 기준에 맞춰 차례상과 손님 맞을 준비를 한 우리 집 윤여사님의 체감은 상당했으리라.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의 무언가를 만나게 되는 날에는 '요놈이 철이구나'하며 즐기는 것이 좋겠다, 당연히 햇빛도 많이 받고 건강하게 자랐을 것이므로. 시금치 가격이 이러하니, 아니 사실은 사시사철 나올 것 같은 철분 풍부한 시금치도 철이 있는 것이니, 가끔 김밥집에서 시금치 한줄기 넣어주는 것을 놀라며 볼 일도 아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시금치를 듬뿍 넣은 김밥과 잡채를 좋아하는데, 앞으로 돌아올 시금치 철에 부지런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금치가 철이 든 바로 그때에.

 

 오늘의 생각, 제철의 묘미는 양적 풍성함과 동시에 들어있는 질적 맛이다. 비싸면 철이 아니니 아쉬워할 것 없다, 철은 분명 찾아온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 제철을 사자. 기본 재료가 맛이 좋으니까 어떻게 해도 중간은 간다.


 처음 끓여 맛본 소고기, 무를 넣고 끓인 토란국은 왜 이제 만났을까 하는 소감으로 감자도 무도 아닌 것이 미끌거리면서 찰지고, 고기 국물 뒤에 숨은 알싸함이 매력적이었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인 오늘, 마트에 다시 가니 시금치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당신, 진정쌍떡잎식물이란 말입니까?'



시금치국

시금치, 두부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했습니다.

푹 끓여서 뭉글한 시금치덩어리가 매력적입니다.

시금치국
작가의 이전글 아욱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