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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Sep 23. 2023

아욱국

가을

텃밭에서 있었던 일,


나눔 텃밭을 한, 두 번째 해의 일이다. 첫해에 우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식물들을 심었었고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수박까지도 키워보았었기 때문에 텃밭 가꾸는 재미도 한창이었고 의기양양함도 한창이었다. 첫 해에는 루꼴라도 심었었는데 맛있게 먹고 꽃도 보고, 영근 씨앗은 병에 담아 모아두었었다, 이름도 분명히 적어두었지, 루꼴라. 그리고 그 씨앗을 다음 해에 밭에 심었다. 그렇게 씨앗을 심은 식물은 바질과 루꼴라였는데, 바질이 새싹이 나고 잘 자랄 때, 루꼴라도 싹을 틔우고 잘 자랐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루꼴라의 잎은 길쭉한 것인데 둥그스름한 것이 새싹이기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이건 잎이 넙적하게 아욱 같달까. 왜 루꼴라 심은 곳에서 아욱이 자랐을까. 이만큼 미스터리 한 것은 없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옛 말은 틀린 것이다. 나는 루꼴라를 심었는데 아욱이 났다. 그 아욱은 옆 밭에서 싹 하나를 얻어와 심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 한참 루꼴라도 아욱도 심지 않다가 올해 봄에는 아욱을 키워서 잘 먹었다.


 얼마 전에 마트에 갔는데 된장국 재료로 아욱이 눈에 띄어서 사가지고 왔다. 아욱의 철이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을에도 잘 자란다고 한다, 잘 자랄 뿐 아니라 가을의 아욱은 맛이 더 좋다고 한다. 한자로 동규(冬葵)라고 하는 것은 '규'가 '아욱규葵' 한자인데 겨울의 아욱을 강조한 것일까. 들어보지 못했던 아욱에 대한 옛 속담 들은 다시 읽어 보아도, 가을 아욱만큼이나 생경했다. 아욱은 미끄덩한 식감을 가진 보기 드문 재료이다. 바다에 미역이 있다면 산에 아욱이 있다. 그리고 그 맛도 무언가 정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쌀쌀한 날 아욱된장국의 매력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따뜻한 된장 국물에 부드럽게 덩어리 진 채소를 우물우물 넘기는 것, 아우-ㄱ!


 마른 냄비에 건새우를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인다. 그 사이에 아욱을 손질한다. 줄기 끝은 잘라내고 부드러운 곳은 적당히 나누고 큰 잎은 반으로 가른다. 아욱과 소금 약간을 끓는 물에 넣는다. 가끔 저어주며 거품을 걷는다. 그리고 이게 내가 요즘 좋아하는 된장국 끓이는 방식인데, 모든 재료들이 우러나고 식탁 준비를 마치고 밥을 담기 전에, 된장을 반숟가락 정도 풀어서 넣는 것이다. 모든 맛의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된장 속에 숨을 여지를 주지 않고 팽팽하게 한다. 그리고 밥을 뜨고 마지막으로, 휘휘 저어 국을 퍼서 식탁에 올린다. 간이 부족한 것 같으면 소금을 더 치고 고춧가루를 뿌리기도 한다. 마늘을 한 조각 저며서 넣거나 파를 조금 썰어 넣기도 하는데, 역시 아욱국은 아욱이 중요한 것이니까 아욱을 한 껏 살려줄 수 있도록 한다, 왼손은 거들뿐*.


아욱국



* 저는 '슬램덩크' 뿐 아니라 많은 요리만화책을 즐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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