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와 로즈마리
추석에 텃밭을 살피러 갔다가 우리 뒷 밭, 북쪽의 어르신을 만났다. 내가 바질 꽃대를 잘라 채집하고 있는데, 어떻게 쓸 거냐고 물으셔서 추슬러서 요리에 넣을 거라고 했다. 얘기를 이어가다 보니 새로운 새싹이 자라고 있는 밭에 바질대가 그늘을 만들고 있어서 신경이 쓰이신 것을 알았다. 조금씩 정리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걷어 낼 것은 걷고 뽑고 자르고 더 햇빛을 쐬주고 싶은 것들은 우선 앞으로 쏠리도록 기울여 놓았다. 워낙 부지런히 가꾸시는 것을 알아서 폐장까지 그대로 두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자주 가서 살피고 속아내기를 해야겠다.
바질에 관심을 보이신 또 다른 어르신께 줄기와 꽃대를 잘라드렸더니 얼갈이 잎을 쥐어주셔서 받아왔다. 더 많이 드릴껄 했다. 상추처럼 쌈으로 드시라고 했는데 부족했을 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에 따뜻한 보리차나 맑은 국을 끓여 먹고 있는데 다음은 얼갈이배추된장국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몇 주 전에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뿌렸었다. 우리 배추 자라는 걸 보시더니 '그래... 뭐 이렇게 키워도 되지!' 힘주어 얘기하고 떠나가셨다. 바질 외에 배추와 무, 로즈마리, 돌나물이 자라고 있고 풍년인 고추가 끝을 모르게 공급되고 있다. 여기서 돌나물은 텃밭의 잔디처럼 키우고 있어서 작물에서는 제외하겠다.
로즈마리는 올해 텃밭 시작할 때 양 끝에 하나씩 심었는데 나중에 심은 하나는 작고 연약해 보이는 모종을 심은 데다 쌩쌩한 더덕, 미나리, 방풍, 토마토와 같은 구역에 머물러서 한동안 이 로즈마리는 마냥 이렇게 여릴 것인가 보다 했었다. 그렇지만 이유를 모르겠는 반전이 있었는데 먼저 심은 것은 말라서 진작에 정리하였고 센 구역의 로즈마리는 당당하게 한켠을 차지하고는 자유롭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11월 말 즈음 폐장 전에 집으로 들여와 화분에서 키울 생각인데 어떤 화분에 심어서 어디에 놓을 것인지 작전을 잘 짜야한다. 로즈마리는 생각보다 집에서 키우기가 어려웠어서 몇 번 집으로 옮겨온 로즈마리는 우리의 관리가 소홀하다 싶으면 금방 시들어버렸었는데, 이사한 집의 베란다는 볕이 잘 들고 이곳은 바람의 계곡 같이 바람이 잘부는 곳이므로 스스로 잘 자라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추와 무는 심은지 한 달 정도가 되었는데 잘 관리하는 다른 밭의 채소들에 비해 '노지' 야채 마냥 자라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반전 아닌 반전이 있었는데 그 단단한 잎을 꺾어서 쌈으로 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힌 것. 아삭함 속에 들어있는 맑고 향긋한 기운이 입안 가득 맴돌았다. 이건 봄의 쓰고 강한 향이 아니고, 여름의 달콤함도 아니고, 겨울의 눈더미 속 포근함도 아닌 가을 햇빛이 투영되는 가벼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