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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Sep 20. 2020

연구가 끝난 식당

, 맛의 블랙홀


 깔끔해 보이는 닭갈비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작은 규모에 좌식 테이블로 되어있는 곳인데 정돈이 잘되어있었다. 주문을 했다. 미리 나온 반찬들은 정갈해 보였고 신선하고 윤이 났다. 닭갈비도 양배추들과 준비가 되어 나와서 철판에 올려졌다. 잔뜩 기대를 하고 익기를 기다리며  반찬들을 맛보았다.

 웬만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콘 샐러드에서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갸우뚱하다가 고추 장아찌를 먹어보았다. 특별한 맛이 없었다. 닭갈비가 다 익어서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은 맛의 블랙홀. 재료의 신선함도, 보이는 것에서 느껴지던 모든 맛도 흡수하여 아무 맛도 남지 않은 상태라고 우리는 평했다. 가게를 나오자 저녁을 먹은 것인지 안 먹은 것인지 모를 정도의 ‘아무것도 없음’이 있었다.


 동네 칼국수집은 연구 끝에 칼국수 면을 첨가제 없이 잘 숙성시켜 만들었다고 쓰여 있었다. 옆 테이블 손님에게 ‘저희는 정량입니다.’라고 말하는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김치는 미리 가벼운 스테인리스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과연 정량인지 딱 그만큼 먹으면 될 정도였다. 주문하고 식사가 나오는 시간은 15분. 이 집 칼국수는 칼국수 면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우동 면 같은 데 둥그스름하고 도톰하지만 단단하진 않고 부드럽다. 밀도가 있기보다는 약간 풀어져있다. 육수는 황태를 쓰는데 그래서 더 어딘가 우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칼국수와 우동 사이 어느 구역쯤 연구를 마친 맛있는 한 끼를 먹으러 종종 간다.


 본격적으로 식사 준비를 할 때 마련한 노트가 한 권 있다. 장 보러 갈 때 살 것, 처음 하는 요리 순서 같은 것을 적고, 일주일치 식단, 도시락 메뉴 같은 것들을 적었었는데, 지금도 가끔 새로운 것을 해봤거나 더 좋다 하는 것이 있으면 적어놓는다.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도 남겨놓긴 했었는데, 뒤적거리며 편하게 쓰기는 종이 노트가 나은 듯도 하다. 아주 예전에 적어 놓은 것을 다시 보면 좀 우스워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중 완전히 실패한 메뉴들은 지금도 밖에서 사 먹는다. 닭볶음탕, 찜닭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 가끔 냉장고 앞에 최근의 맛있게 만들어 먹었던 메뉴들 목록을 적어 놓는 것도 좋다. 메뉴판 같이 만들고 보면 재미도 있고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우리 집 식탁도 어느 정도는 속한 영역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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