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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Jun 16. 2024

경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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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장 기록  24.06.11. 18°-29° 서울

 천도복숭아가 많이 보이고, 햇자두와 황매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토마토, 감자는 한창이어서 한 바구니 2000-3000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가끔씩 근처에 볼 일이 있으면 경동시장에 구경을 가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처음 경동시장(약령시, 청량리청과물시장 포함)에 갔을 때는 약령시를 돌아다니며 구분할 수 없는 약재들의 기운 속에서 '건강해지는 것 같지 않아?'라며 일부러 깊은숨을 들이쉬기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동시장 구석구석을 구경 다녔는데 이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어디 즈음 있다는 걸 알고 여유 있게 한 바퀴를 돈다. 그렇게 다니다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스타벅스에서 쉬어갈까 하며 몇 번 시도는 했으나 사람들이 몰려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오랜 극장을 리모델링했다는 점이 공간의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빛이 없는 휴식공간이라는 단점도 있고 구석구석 통하는 사람들의 시선들이 재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해서 다시 가보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큰 시장 구역에서 그중 구입하기의 난도가 낮은 청과물 시장은 신선한 제철 과일들을 어디에서 보다 먼저 저렴하게, 그리고 한 바구니 작은 단위로도 살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서 꼭 들르는 곳이다. 오늘은 햇자두가 나와있어서 사보았다. 알록달록 작은 녀석들이 보기보다 달고 맛이 잘 들었다. 토마토와 감자도 이것들을 사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싶다가 그렇게 다 사서 가방에 넣다간 매우 피로한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자제하기도 한다. 간 김에 이제 나오기 시작하는 황매실도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볍게 간 나들이라서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과일 외에 내가 살 수 있는 범위의 것들은 계절 채소들과 보리차, 둥굴레차, 그리고 대추, 후추 같은 것들이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어르신들의 노하우가 담긴 바구니카트들은 꽉 채워지고 있다.


 요즘에는 신당동 시장도 그렇고 중부시장도 그렇고  구경다니다보면 작은 카페나 식당들이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여기 경동시장도 몇몇이 조용하게 자리 잡았다. 큰 시장이어서 곳곳에 쉴 수 있는 곳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차 한잔 하고 쉴 곳을 찾는데, 조금 한적한 구역은 약령시다. 한의약박물관 마당에 잠시 앉을 수 있고 그곳에 딸린 카페는 다른 메뉴는 모르겠지만 옛날팥빙수가 무척이나 맛있다. 단팥과 얼음의 비율이 거의 1:1이 되는 것 같고, 찹쌀떡, 인절미, 후르츠칵테일이 오밀조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위에 뿌려진 대추칩은, 그 대추칩이 무척 맛있었는데, 약간 도톰하고 너무 딱딱하지 않으면서 대추맛이 잘 살려져 있어서 다른 곳에서 먹었던 것들보다 월등히 맛있었다. 약령시여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면서 한 그릇을 나눠먹고 길을 나선다.


 우리가 언젠가 겨울에 구경을 왔을 때는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쓸쓸한 날이었다. 그날은 근처의 한방 찻집에 들어가 보았는데 기능성 한방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였다. 조금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메뉴 종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약재상에 딸린 카페의 이상한 분위기가 있었고 게다가 갈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재미있는 것은 사장님이 곱게 땋아진 네팔모자 쓰고 있는 우리에게 영어메뉴판을 보여준 것이었다. '우리한쿡사람이헤요! 이걸로 주세요.‘


 '전통'이라는 무게와 격식의 한방차보다는 '커피집' 같이 편하게 접하고 쉴 수 있는, 쉼에 그리고 여유 있는 한잔의 차에 맞는 (한방이 곁들여져 있어도 좋은) '찻집'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비싼 비용을 들인 전통한방차 체험보다는, 전통한방차는 그야말로 ‘정통’한 한방차로 그에 맞는 공간과 서비스를 가진 곳이었으면 좋겠고, 그보다는 가벼우면서 접근하기 편하고 시장에 머무르며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 짜투리 공간을 내어주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늘도 필요로하고 편하게 기대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뭇잎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러다가 살짝 불어드는 신선한 바람에 끌려서 마음을 들썩이면 다시 길을 나서야 하기때문이다.


 체험보다는 '정통'에 대한 경험을 갖고 싶다.

 찻집이라면 편안한 쉼이 있어야 한다.

 이건 여행자에 대한 배려, 방문자에 대한 환대,

 그 누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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