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를 기다렸다, 새사과가 나오기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풋내와 새초롬한 기운이 몰려오면서 이건 잊고 있던, 비싸서 잊기로 했던 사과의 맛이다. 사과 스마트폰을 매일 쓰고 있지만, 사과는 어렵다. 그렇지만 잊지 말고 사과해야 한다. 사과에는 때가 있다.
저번주까지는 근처 시장에서 아오리 한 봉지에 9000원 적힌 것을 보고 '헉' 소리를 냈는데, 다행히 조금씩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보았고, 마침 좋아하는 과일가게에 사과가 들어와 있어서 집어 들었다. 사장님은 웃으시면서 "오늘 처음 가져왔어요. 맛이 잘 들었습니다."라고 하셨다. 동네의 믿음직한 과일 가게는 적당한 때에 적정한 가격으로 사과며 채소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하다. 올해는 유난히 자두, 복숭아, 수박을 실컷 사다 먹었다. 그리고 이제 사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청사과는 청량한 여름의 사과다. 한 철 맛볼 수 있는 것이니 신나는 시간을 맘껏 즐길 테다.
영화 <더 셰프 Burnt>의 첫 장면은 꾀 인상적이었다. 셰프인 주인공 아담 존스(브래들리쿠퍼)는 출근길의 버스에서 말한다. "내 멘토인 장 뤽은 내게 셰프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분이 말했다. '신이 굴과 사과를 창조하셨으니, 그보다 나은 레시피를 만들 순 없다.' 하지만 노력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신화와 과학자들에게 그리고 의사들에게 등장하는 이 과일은 신비로움부터 건강함까지 잘 익은 사과의 빨강만큼이나 특별하다. 매일 사과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하는데, 요즘 같은 사과 환경에서는 주의하며 건강 지표를 살펴봐야 하는 걸까.
어릴 적에는 배를 훨씬 좋아했지만 요즘 제일 좋아하는 과일을 꼽으라면 사과를 말한다. 커서 알고 보니 그 이유는 입에 맞지 않는 사과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아삭거리면서 상쾌한 맛이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이렇게 구분을 한다면 사과의 품종이나 맛을 잘 구분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늘은 이런 거?' 라며 지금 내 앞에 있는 것 중에 잘 고르는 것 정도가 내가 하는 일이다. 능금이라는 말도 익숙한데, 사과의 다른 말로 생각할 수 있으나 종이 다르다고 한다. 상위 단계인 속은 같다, 사과나무속(Malus). 그래도 (그 말을) 많이들 사용한 것은 기록이 오래된 우리의 자생종인 '능금'이라는 말과 능금이 가진 이미지가 사과와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사과는 1900년대에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영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으름과 바나나 같은 관계가 아닐까. 사과의 한자 사는 모래 사沙 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푹 익은 사과 조직의 모습이 강조된 이름이라니 조금 이상하긴 하다, 오히려 모래 같은 조직은 배나 더덕 같은데. 산사나무의 사楂 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도 있어서 이 부분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내용이니 두루뭉실하게 남겨놓아야겠다. 참, 우리는 으름으로 담금주를 만든 적이 있는데 바닐라 보드카 같은 부드럽고 밀도 있는 하얀 맛이 좋았다.
예전에 친구는 본인이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의 샐러드 소스가 맛있다면서 주방 셰프에게 물었다며 비법을 알려주었는데, 사과와 양파를 같이 가는 것이었다. 양상추 샐러드에 넣으면 상큼하다.
내가 브런치에 올린 첫 번째 글의 제목은 사과였는데, 작년부터 사과를 걱정하고 또 불평하며 먹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매일의 사과는 이런 이유에서 그리고 또, 다른 이유에서 잠시 중단되었다. 다른 이유는 이 아침 사과를 꼭 먹이고자 했던, '그'가 짜 놓은 일정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아침 식사를 하려면 부드럽고 씹기 수월한 먹기 편한 식사가 되어야 하는데 사과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에 관해서라면 작년에 적어놓은 슬픈 이야기가 있다, r은 사과보다 바나나가 좋다고 했다.
j의 사과 자르는 법
우리는 사과를 껍질째 먹는데, 사과 심이 오각형이 되도록 둘러가며 자른다. 이건 j의 방법이었는데, 어느 날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에서 케빈스페이시가 이 방법으로 사과를 자르는 장면이 등장해서 재밌어한 적이 있다. '아니 저 사람 나랑 똑같이 사과를 자르네?'
지금, 사과가 익어가고 있다. '사과가 되지 말고 도마도가 되라'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건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사과'를 찾다가 처음 들어본 것인데 여름 사과철에는 빗겨가는 말이다, 그리고 또 아무렴 어떤가 순둥해보이는 도마도도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낸, 나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빨간 사과도 매력적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