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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Oct 09. 2020

호박

재료


 올해처럼 ‘기후의 변화다.’를 직접 느껴본 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 냉방과 제습 때문에 에어컨을 켜고 지내다가, 며칠 전부터는 밤에 보일러를 켜고 있다. 끊임없는 설비 가동뿐이 아니고, 장마 동안 텃밭 작물들이 남아나질 않았다. 올해 지정받은 밭은 토질이 좋지 않아서 배수가 잘되지 않는 곳이라 더 문제가 생겼다. 5-6월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 주러 가려고만 하면 적당한 때에 비가 온다며 게으름 피우며 좋아했는데, 여름 내내 비가 올 줄은 몰랐다.

 

 한여름에는 야채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어지간히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한 집에서 소화할 수 없는, 풍성함이 좋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고 처리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기간이 있다. 이때가 되면 집집의 성격이 드러난다. 나눔 텃밭을 시작했다고 얘기하자 늘 사려 깊은 동네 선배는 "우리 집은 의무적으로 상추 두장씩 먹어."라고 얘기해줬는데, 무슨 뜻 인지 곧 알게 되었다. 그때가 되면 텃밭 야채를 나눌 때 신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접근하며 상대의 의사를 물어보아야 한다. 텃밭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족이 몇 명이나 있는지, 요즘 바쁜 일이 있어서 외식이 많진 않은지, 자칫 부담스러움을 넘겨줄 수 있다. 아무리 햇빛 받고 튼튼하게 자란 맛있는 육질이 살아있는 상추이지만. (육질이 살아있다는 표현은 자주 가던 카페 직원이 상추를 맛보고 말해 준 것이다.) 처음에는 많이도 담아 건네주었지만,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확실해져서, 한번 한 끼 먹을 양을 생각해서 담아 건넨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나간 여름의 이야기이다.


 추석에 호박을 선물 받았다. 결이 고운 예쁜 호박이다. 반은 호박전을 해 먹고, 그 반은 된장찌개에 넣어 먹었다. 남은 1/4 조각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내일은 남은 호박에 당근, 감자를 더해 야채 볶음밥을 해 먹어야겠다.


 나는 호박을 한 개 선물 받은 것이 너무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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