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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요리

그리고, 집

by 고양이삼거리

나는 오늘, 머뭇거림 없이 미끄덩거리는 오징어의 껍질을 꽉 움켜쥐고 벗기면서, 능숙하게 손질하는,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는 내가 낯선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서 다소 어색하게 요리하던 지난 순간을 떠올린다. 훗, 애송이시절! 지금도 거창한 것은 없고 못하는 것이 많지만 내 방식대로 즐겁게 요리하고 있기에, ‘매일의 식사’에서 이 ‘요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 요리의 시작과 그 사이의 이야기는 시간이라는 것 만으로는, 생활이라고 하는 것 만으로는, 그리고 요리법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요리는 집에서 시작됐다.


집이라는 곳에서는 못하는 것이 없는데 집은 처음부터 우리의 모든 활동을 담으면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편하고 쾌적해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구석구석 기계와 인공지능까지 연결되고 있다. 불도 쓸 수 있고 찬물, 더운물도 나오고, 사용한 물이 유유히 빠져나가기도 한다. 아늑한 실내에 창문으로 햇빛도 들어오고 방바닥은 따뜻하고 에어컨 바람이 상쾌하다. 참, 어두우면 불도 켤 수 있다. 인공지능 세탁기를 부려먹으며 일도 맘껏 시킬 수 있다. 여러 종류, 용도의 공간이 있지만 전문식당을 제외하고 부엌을 가지고 요리할 수 있는 곳은 집이다. 물론 부엌이 없는 집도 있다. (나는 종종 이렇게 집의 익숙한 요소들을 생각나는 데로 나열해 보곤 하는데 그러면 당연한 것들이라도 고유 명칭을 떠올리면서 낯설게 보기가 가능했다.)



요리는 식사와 집 사이에 있다.


집밥이라는 말이 주는 푸근함,

그건 집에서 만든 요리에서 나왔다.

집밥은 언제 시작되는가.

집과의 친밀도는 변하는 나와 가족에 맞춰서 편한 공간을 만들고 적극 사용하고 가꾸는 데서 온다, 세심한 관찰과 애정이 필요하다. 그 집, 안에, 모든 설비가 들어앉은 부엌이 있다. 냉장고라는 기기가 있으며, 작업대 위의 도구들과 식료품 저장소, 그리고 식탁이 있다. 장 본 물건을 정리하고, 채소를 다듬고 보관하고 씻고, 잘라서 요리하고 두런두런 앉아서 식사하며 알게 모르게 집을 이용하고 구입한 도구를 익히면서 시간을 보낸다. 작업은 반복된다, 다음 요리로 연결! 집과 나 사이에 자연스러우면서 적극적인 활동으로 요리가 놓였다.

집에 오래 머무르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자.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유년기를 보낸 나의 집 부엌은, 마당 있는 계량 한옥에 딸린 아궁이 있는 곳이었고 마당에서 이용하던 석유곤로, 그리고 유리 미닫이 문 달린 툇마루에 설치된 가스레인지와 한 겨울에 안방에 등장하는 난로를 가지고 있었고, 특별히 한 가지씩 요리하며 즐거웠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설탕 바른 도나스, 달고나, 계란프라이, 은행구이. 아파트로 이사오며 구입한 전자레인지는 설명서에 딸려 온 요리 레시피와 함께 손쉽고 간편한 요리 탐험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물론 이때의 부엌은 나의 부엌은 아니었다, 내 어머니, 아버지의 부엌이다.


요리와 생활


독립하여 일을 시작하고 혼자 생활하던 시기에는 밤낮없이 공간설계에 매진하면서도 내 공간에 돌아와서는 쓰러져 쉬기 바빴고 집을 유지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내 집은 편안했고 간간히 도시락을 싸기도 했지만 아직 어색한 사이인 미지의 영역 부엌이 있었고, 나는 언제든 집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건 나의 가족과 우리 집, 안에서도 한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집에서 쉬고 싶은 나와 우리 집 점심관리본부장으로서의 나 사이에서 미묘하게 줄다리기하는 모습이 알게 모르게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나는 역시 시간, 내 집과 하나 둘 쌓인 시간과 함께 하는 경험으로, (마치 오늘 오징어를 다듬은 일 같은) 내게 맞춰 작동되는 단축키를 마스터한 플레이어 마냥 능숙한 종목을 늘여가며 집을 길들이고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일들을 오히려 힘들이지 않고 요리조리 부엌을 운용하며 요리 자체에 빠져들어 즐길 수도 있게 되었고 내 집, 부엌은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서 차곡차곡 소소한 이야기들과 생각을 쌓아가고 다시, 부엌을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 부엌은, 요리의 일들은 식사시간, 우리의 일상과 그리고 나아가서 작업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의 요리가 시작되던 순간은 내가 내 생활에 더 깊이 들어가며 우리의 집을 가꾸던 날들과 닿아있었다. 이 변화 시기에 작은 고민과 선택들은 생활방식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가 되었고 이건 이제 여유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우리에게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준다.


집에서 쉰다는 말은 다양한 방면으로 읽힐 수 있지만 어떤 경우는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하는 곳이라고 해석된다. 이때의 집은 ‘일’ 우선으로 중요도가 올라간 생활에서 그것을 지탱하는 보조 역할로, 집의 기능이, 나의 개인 생활이 축소된다. 집에 돌아오면 씻고 내일의 일을 위해서 휴식하고 다음 날 집을 나선다. 이때, 집에서의 다른 활동은 피로를 가중시킨다. 나의, 집의 평소 같음을 유지하기 위한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간다. 그중 요리는 외식이나 배달음식, 포장 구입까지 다양한 대안이 있기 때문에 먼저 밀려가기 쉽다. 요리의 주변에 있는 장보기, 다듬기, 설거지, 뒷정리 등의 일을 종합한다면 더욱 그렇다.


집을 나서면 집에서 빠져나가 전문화된 기능 공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밖에서 분산된 집의 기능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식당을 말할 것도 없고 공유 주방도 있고 쿠킹 클래스도 활발하다. 어떤 경우는 더 전문화된 영역으로 들어가서 차이를 벌이기도 했다. 카페, 스터디카페, 작업실, 세탁실.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한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든다. 새로운 경험에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집에 머무는 것, 집 안에서의 친밀한 활동은 줄어들 수 있다.


다시, 회복되는 집


외부의 활동과 집, 활동 가치가 다시 역전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많은 것이 과잉되고 있는 시기에 무언가를 채우는 것은 무언가의 부족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더욱 와닿는다, 사람이 유한하다는 것. 코비드 시기에 많은 영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멈추었던 때. 재택근무도 많이 하던 시기이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발전이 가져온 재택근무, 집이라는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편리한 디지털 기기들.


기사에 혼술과 혼밥,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을 물가와 경제적인 영향으로 연결해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나는 그것이 내 공간과의 관계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밀도 높은 서울의 외부에서, 식사하는 공간들에서의 피로도도 하나의 영향일 수 있지 않을까. 쉬어가기 불편한 의자와 소란한 카페, 식사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서비스의 시간과 공간.


집은 고요하다.


지금, 편하게 쉬고 있는 집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고 우리의 변화를 담기 위해서 계속 살피고 불편한 것은 바꾸고 또 매일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들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러면서 계절과 날씨에 따라 창을 열고 보일러 온도를 맞추고 들여온 것을 정리하고 내보내고 하며 같이 유지하고 성장하는 곳인데, 그 '함께'라는 것이 운영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집은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어색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멈춘 공간, 그것을 순간순간 깨트리면서 작은 활기를 주며 제철 채소, 과일의 알록달록한 신선함과 함께, 계절의 변화와 함께, 식사하는 식구들과 함께 매일 조금씩, 다시 자리를 잡는 활동이 요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집의 분위기, 문화를 완성하면서 부엌 경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요리이다.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이 요리하는 것 자체는 한 끼 식사로 소화되고, 어떤 결과로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의 완성을 돕는다. 만들어진 집 안에 고이지 않고 성장의 계절, 숙성의 이야기들이 함께하는 물결을 만든다. 그것들을 잘 이끌어내는 것이, 잃지 않고 살피게 하는 것이 요리인 것 같다. 식탁 위에 활짝 핀 꽃처럼 생기발랄하게 피었다가 사라진다. 내가 가꾸는 집에 책임과 애정을 가질 때 요리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집에 관한 것은 내가 머무르는 장소에 대한 것, 그러니까 나에 대한 관심이다.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나의 편안함을 찾아가는 것은

집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힘들여 만든 나의 근력이

나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다.

왜 요리였을까?


그 안에서 느끼는 요리 자체의 즐거움은 또 다른 영역이다. 이건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좋은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구상해서 조합하고 만들어낸다. 과학이기도 하고 문화 이기도 하고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맛있고 건강하다.


건강, 이 건강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는,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할 필요가 없었는데 40-50 나이를 들어가면서, 즐겨 먹던 복잡한 가공식품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멀어지는 내 몸이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적어 본다. 단순한 조리법으로, 재료로 만든 음식이 필요하다. 내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을 집에서 즐길 수 있다. 몸의 건강과 요리의 지속가능을 위해서, 외부 경험과의 균형을 위해서 집은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해,


다시, 요리로부터 시작하기

식사로 < 요리 > 집으로


(앞에서도 말했지만) 요리는, 집에 머물렀던 시간에서 자연스레 연결되는 활동이었던 것이 조금은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만 하는, 관심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영역으로 옮겨갔기에, 그래서 이건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 이전에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친해질 필요가 있는’의 영역이 되었다. 우리는 이미 맛있는 요리들을 맛보았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들에 익숙하고 전통 식품들 김치, 장, 된장, 고추장뿐 아니라 다른 장소의 식재료들도 쉽게 살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맛을 조합하는 것은 뭐,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만큼 새로운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집에서 하는 요리들은 우리의 전통음식문화 김장, 장 담그기 등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끓이고, 굽고, 튀기고, 섞는 고전적이며 간단한 방식들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멋진 새로운 도구들은 요리를 더욱 편하고 즐겁게 만든다. 발효는 조금 어려운 것 같지만, 다 믿는 구석이 있고 김치냉장고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요리와 친해지기

요리의 시작이 다른 어떤 것 보다 집에 대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런데,

사실 요리는 집에 기대어 있지 않다.


요리,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휴가철 낯선 숙소에서

즐겁게 요리하는 때를 생각해 보자.

어떤 것이 요리하게 만드는가.

시간과 여유일까, 바비큐통일까?


어떻게 요리할까


우리에게는

대대손손 전해 내려오는 것,

친절한 기록이자 설명서

요리의 방법, 레시피가 있다.


요리는 종합활동이기 때문에 쉬운 것 같기도 하고 어렵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요리법이다. 많은 시간과 기술이 쌓인 방법이다. 그걸 해보는 것. 약간의 훈련이 필요할 뿐.


다시, 요리에서 시작되다.

식사로 < 요리 > 집으로


요리 피로도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로 집 근처에서 장보기가 있을 것 같다. 살 수 있는 품목에 제한이 있지만 제철 재료를 구입하는 것은 부담 없고 편리하다. 골목을 오가면서 보이는 동네 채소 가게에 들어가서 바구니를 골라 나온다.


요리하는 기본 감각을 익히고 오래 지속하고 싶다면 단순한 조리를 가볍게 반복하면서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한다. 라면이나 간편하게 파스타를 만드는 것처럼, 가장 기본인 냄비나 솥에 밥 짓기로 시작하는 것이다. 성능 좋은 전기밥솥이 맛있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쌀을 씻고 불리고 냄비에서 끓이고 뜸 들이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따끈한 밥 한 공기와 불을 조절하는 고급 요리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밥을 할 줄 안다는 것, 그것도 필요하다. 양은 얼마나 하고 얼마나 불리는 것이 좋은지, 중불, 약불 조절하고 저어주고 뜸 들이고 그러는 사이 쌀알들이 어떻게 투명하게 익어가는지, 어떨 때 밥 물이 넘치는지, 왜 바닥에 붙어있던 밥알들이 뜸 들이고 나면 자연스레 떨어지는지. 그리고 밥을 죽으로 볶음밥으로, 다양한 채소밥으로의 변주가 가능해진다. 가볍게 쌀 1kg을 구입해 보자. (우리는 보통 4kg을 사는데 적은 양을 사면 관리하기 수월하다.) 스파게티면은 보통 500g 단위로 파는데 1인분에 100g으로 보면 5회 먹을 분량이고 쌀 구입 양 1kg과 비교하면 10회 요리할 수 있는 양이다. 쌀은 1인분에 150g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100g을 1인분으로 하니까 양으로 보면 파스타와 비슷해진다. 쌀, 물, 냄비나 솥만 있으면 되고 반찬은 구입해도 되고 간단한 채소볶음과 보리차 정도로도 한 끼 식사가 된다.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켜보자. 바닥에 눌어붙은 것 같았던 밥알들이 불을 끄고 뜸 들이는 동안 탄력을 되찾으면서 자연스레 떠지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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