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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Nov 14. 2020

막걸리

한 병

 

 코로나 19로 처음으로 이동제한이 생기면서 sns에 발코니에서 노래하며 생활을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즈음부터로 기억한다. 근처 단독주택 외지인 할아버지는 잘 가꾸어진 작고 단정한 정원에서, 아니 정확한 위치를 얘기하자면 대문 앞에서 가끔 바이올린을 켜신다. 점점 소리가 좋아지고 다양한 곡을, 골목 연주를 펼치신다.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약간 어둑해지는 주말 오후에 나른하게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각자의 일을 하다가 ‘지금이다.’하며 슈퍼에서 막걸리 한 병을 잡아와 나눠 마셨다.


 사실 그거슨 마치 오늘 오후 4시 같은 날이다. 바이올린 소리는 없지만, 멀리 마늘인가 파 인가 엄청나게 싸게 주시겠다는 소리와 새소리가 나른하게 들린다.


 도봉구에는 서울탁주도봉연합제조장이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 곳곳 슈퍼에는 매끈한, 먼지 한 톨 머무르지 못한 새 막걸리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가 슈퍼 입구에 놓여 있다. 그걸 한병 잡아 들어가, 가지고 간 천 원짜리 한 장과 바꿔 나오면 된다.


 얼마 전 여름 더위가 조금씩 물러갈 때 비 오는 아침이었다. 이상하게 슈퍼 앞에 막걸리가 없었다. 가게로 들어가 냉장고를 보았는데, 냉장고에도 막걸리가 없었다. 더욱 이상하다 할 즈음에, 먼저 가게에 들어와 계셨던 아주머니가 젊은 사장님께 물으신다.


 “그래서 언제 오나?”

 “한 삼십 분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일 이래.”


 비 오는 날에 막걸리가 동이 나다니.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동네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구나.


 “막걸리가 없는 건가요?”

 “네.”


 답하는 사장님도 웃으신다. 나는 적당히 다른 것을 잡아서 나왔고, 아주머니는 더 기다리실 것 같았다.


 산지당일배송된 막걸리를 부담 없이 즐기는 편안한 오후다. 막걸리에 파전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여기서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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