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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탐방, 탐방기록

남의 부엌

by 고양이삼거리

우리는 낙성대역에서 샤로수길로 따라가며 텐동집에 가려고 걷고 있었는데, 가는 길에 더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바꿀 요량으로 가게들을 살피면서 걷다가 작은 길 코너에 검은 페인트로 둘러있는 건물 1층 외관의 출입구 상단에 흰 글씨로 TONKATSU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 '돈까스도 괜찮지'하며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방과 면한 바와 창가 테이블 몇 개로 나눠진 자리를 살펴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짠’하고 등장한 직원이 ‘몇 분이세요?’라고 물었다.


세명입니다.


바에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지만 세명은 기다려야 한다. 입구 대기석에 앉아서 메뉴를 고르고 큰 창 밖에 낮은 단독주택에서 넘친 여름 나무줄기를 구경하다가 그 앞 4인석에 앉아 포크를 들고 신난 꼬맹이와 젊은 엄마, 아빠를 보니 이곳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본다. 넓진 않지만 실 내의 대기공간, 간단한 짐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과 스마트폰 충전트레이가 알차게 짜여진 것을 보면서 오호, 필요할 때 편하게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자리를 안내한다.


안쪽 바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메뉴는 들어오자마자 전달했었다. 간단한 메뉴판, 안심, 등심, 새우 메인 메뉴 중 등심 돈카츠 3인분. 거의 8시에 가까운 늦은 저녁이어서 그런지 한적한 편이다. 바 자리는 넓고 단단한 테이블이었고 모던한 스테인리스 등받이 낮은 의자는 묵직해서 생각보다 안정감 있고 편했다. 테이블 위에 찬 물병을 집어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시면서, 그제야 찬찬히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테이블 자리와 바 자리 사이 공간은 좁지도 않고, 너무 벌어지지도 않고 한 사람 지나가기에 적당해서 깊이 들어오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오픈된 주방에 통유리로 환기창 없는 식당의 실내 공간인데 어색하게 눈에 띄는 화려한 공기청저기도 없이 답답하지 않고 온도도 적당하며 쾌적하다. 천장 설비는 볼 여력이 없었다. 이것은 사장님의 모든, 적정 설계가 만족스러운 신뢰의 마음이 작용한 것 일 수 있으나 나의 기억 속에 그렇다.


일단 널찍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꾀 마음에 든다. 이 바 자리의 구성이 남다른 점은 오로지 식사에만 사용된다는 것과 주방 유닛과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얼음물과 소스류만 큰 용기에 담겨 테이블에 있고 중간지대에서 물병을 채우거나 서빙하는 직원들 너머 건너편에서 꼼꼼하게 튀김옷을 입히고 있는, 입힌다기보다는 꽉꽉 누르고 있는 쉐프의 작업 모습이 보인다.


00차 드리겠습니다.


생각치 않게 티 팟과 투박하고 귀여운 찻잔이 놓였다. 무슨 차인지 이름을 얘기해 주셨는데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잘 못 들었다. 각자 자리에 차를 받은 것이 좋았다. 두리번거리던 자세가 진정되고 갑자기 차분해지는 것이 이건 어쩌면 돈카츠 당장 먹으려는 태세를 갖추고 있는 배고픈 자들을 설정한 시간 동안,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진정시키려는 쉐프의 전략이다! 우리는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작은 잔을 조심히 잡고 달그락 거리면서 자세를 바로 앉았다. 전체적으로 모던한 식당 분위기와 다르게 나무 받침에 올려진 찻 잔의 투박한 질감은 앞으로 나올 음식이 담긴 그릇과 결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곳은 다양한 층의 기류가 튀지 않고 기본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흐르며 다채롭게 느껴진다. 메인 주방 옆으로 일본식 그림이 프린트된 페브릭 가림막이 살짝 열리면 보조주방이 엿보인다.


바로 그때, 저-쪽에서 길고 얇은 유리컵에 황금빛 액체가 부드러운 거품을 올리며 가득 담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 셋은 회의를 거쳐 홀린 듯이 생맥주 한잔을 시키게 된다. 1년 넘게 술을 거의 끊은 두 명의 성인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날만 마심) 이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대신 한 잔을 한 모금씩 식사가 나오기 전에 나눠 마시기로 했다, 이 셋은 그래도 되는 사이이다.


부드럽고 쌉싸름하다!


얼마 만에 마셔보는 생맥주인지 모르겠다. 한 모금에도 살짝 옅은 취기가 오르는 게 모든 준비가 된 것 같다. 튀겨낸 카츠를 집어 올려 기름을 빼는 사이, 트레이 위에 심상찮은 특수 기기가 작업물과 15센티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는데 빛을 주어 온도를 유지하는 원적외선? 자연광? 온열기쯤일까, 아무튼 갓 튀겨 나온 카츠들은 줄지어 침착하게 뜸 들여진다. 때맞춰 쉐프가 살짝 사인을 주면 밥과 국을 담거나 접시 플레이팅이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튀김은 주방 가장 안쪽에서 시작되고 옆으로 옮겨가며 뜸 들이고 자르고, 올리고 유연한 S자 동선을 만들며 중간지대를 거쳐 우리 앞에 차례로 놓인다. 주방 유닛의 통로 폭은 벽에서부터 한 명이 고정된 자리에서 작업하기 충분할 정도로 떨어져 있고 유닛과 바 테이블 사이 중간지대 통로는 식기들을 들고 여유 있게 이동하기 편하게 살짝 더 넓고, 바 자리와 테이블 자리 사이 이동 통로는 식사하는 사람들과 이동하는 사람들을 고려해서 살짝 더 넓다. 바 테이블은 벽에 딱 붙어서 손님 영역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고, 주방 유닛은 벽에서 떨어져 통로를 만들고 영역을 넘나들며 이동과 관리가 편하게 되어있다.


밥 먼저 드리겠습니다.


도톰하고 멋스러운 하얀 면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밥과 국을 내어주었다. 이렇게 마주 보며 있으니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그릇을 놓는 손 짓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테이블이 깊어서 적당히 손을 뻗어 넘겨주고 받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받은 밥과 국을 앞으로 올 메인 요리를 생각하면서 적절하게 배치하는데, 아니 그런데 이 밥그릇 안에 담긴 알이 굵고 무척 윤나고 탱글탱글한 밥, 이게 뭐람! 채소들이랑 자작하게 담긴 된장국은? 밥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이에 돈카츠 접시가 등장했다.


잘 먹겠습니다.


묵직한 둥근 접시에 도톰하게 잘라진 등심 카츠, 한 조각이 눕혀져 잘린 면에서 살코기와 비계가 잔잔하게 기름을 머금고 복숭아 같은 선홍빛을 보이고 있으며 양배추가 수북하게 올려지고 고추냉이, 두 가지 소금, 채 친 단무지가 약간 곁들여 있다. 그것들을 가로질러 젓가락이 가지런하게 뉘어있다. ‘나를 집어요’ 젓가락을 집어서 내가 먼저 먹은 건, 먼저 홀려있던 밥. 조금 촌스럽지만 밥을 한 젓가락 집어서 먹어본다. 우아! 찰기와 윤기가 흐르는 밥을 씹으면서 돈카츠를 탐색한다. 기대되는 순간이다.


탐방탐방


젓가락으로 파삭한 튀김옷을 느끼며 한 조각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 아-ㅁ 크게 베어 물고 우물우물.. 아 적당히 기름지고 부드러운 담백한 고기 사이에 날카로운 식감으로 구운 맛을 주는 바삭한 튀김옷이 적당히 섞이면서 고소하다. 퓨, 천천히 먹자! 커다란 소스통을 건네받아 하나는 양배추에 뿌리고, 하나는 종지에 담는다. 이제 완전하게 세팅이 되었다. 접시 위에 한 꼬집 담긴, 얇게 판 형으로 갈라져 투명한 소금을 살짝 찍어서 맛본다. 깔끔하고 부드럽게 단맛이 흐른다. 저 편에서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들어 기울이고 쬐그만 숟가락으로 담던 것이 이 소금일 거다. 반짝이면서 사르르 녹는 자태를 가졌다. 참 다양한 소금의 세계이다. 다른 한 종의 소금은 잘 구분하지 못해서 아쉽다. 다음에 주의를 기울여봐야겠다. 이쯤 되니 우리 식구들도 너무 맛있어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고, 이거 먹어봤냐, 이렇게 먹어봐라 약간 촌스럽게 소란스럽다. ‘이거 소스도 맛있어!’ j는 보통 양상추에 소스를 뿌리지 않는데 맛있다면서 권할 정도였다. 우스터소스도 약간 묽은 제형인데 신맛은 거의 없고 부드러우면서 특유의 나무 향만 조금 드러나있는 게 마음에 든다. 이렇게 작은 변화들과 같이 돈카츠를 즐기다가 쫀득한 찰 밥과 우엉, 무, 버섯 채소들이 조금씩 담긴 약간 기름지게 부드러운 된장국을 곁들이면 다시 그 맛에 빠져들고 밥을 소금에 살짝 찍어 맛본다. 역시 맛있군, 옆 자리에 찰밥 같이 소금에 살짝 찍어 먹어보라고 정보를 전달한다. 맥주까지 한 모금씩 나눠 마신 우리는 약간 들뜬 기분으로 한 끼 식사를 즐기고 있다.


식당 안은 말소리만 간간히 들리고 조용하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식사에 집중하던 옆 사람이 깨끗한 접시를 남기고 떠나자 두 명의 손님이 자리를 채웠고 맥주 두 잔이 전달되었다.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린다.


접시에 오독한 단무지도, 싸-한 고추냉이도 지워지고 밥과 국까지 잘 먹으면 양도 충분하다.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한 조각은 남겨서 j에게 전달되었다. 작은 곁들임들이 소소하게 담겨있는데 어느 것에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한 상차림으로 완전했다. 사장님의 설계는 세심하고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는 것 같다.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는데 그 사이 해가 완전히 졌다. 어두운 골목에 빛나는 간판도 없이 밝은 창안에서 가게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했던 오늘 이런 즐거운 일이 생길 줄이야!


돈카츠 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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