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들은 각자 특별한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나의 능력은 장소를 지우는 것이다. '어디 가봤는데 좋았다'하며 친구나 가족들을 데리고 가면 가게가 문을 닫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일이 한 때 연속해서 일어났었고 그 끝은 거대한 공간에서 벌어졌다. 오랜만에 찾아간 코엑스가 통 채 없어진 것이다 (전체 리뉴얼 중). 솔직히 황당하면서도 내 능력이 이 정도인가 우쭐하기도 했다. ‘그것 봐 장난 아니지?’ 그렇게 큰일이 있고 난 후 능력은 점점 사라졌다. 그때즈음인가 포털의 지도서비스가 무르익어 장소를 검색하고, 영업유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리 꼭 확인을 하였고 그렇게 나의 능력은 시대의 흐름 속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웃긴 일들의 기억을 종종 사람들과 얘기하기에, 지금 그런 사건들을 발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한구석, 참 씁쓸하고 슬픈 일이다.
근거리, 원거리 시력이 떨어지고 있는 요즘 (비교적) 또렿하게 보고 기억하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능력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 예전 선배들이 당황할 때 덜 놀렸어야 했는데. 하루 종일 모니터와 작업물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이던 때도 끄떡없었는데, 한창 더, 궁금한 것들도 많아지고, 살펴보며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 눈은 확실한 시간의 휴식과 보호된 환경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시선에서 명쾌하지 않은, 불확실성이 커지니 조금 더 침착하고 조심히 살피는 움직임을 키워야 한다, 이건 그러나 저러나 꼭 필요한 능력이었기에 앞으로는 이쪽으로 개발을 해야겠다.
조용하게 눈을 감고, 그녀의 음악 속 깊은 감정까지 다가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모든 삶을 다독이며 읊조리는 후렴의 가사에 기대서 나의 슬픔을 만끽하며 노래를 들어야겠다.
허회경 "그렇게 살아가는 것"
https://youtu.be/4QPE6jrKVWg?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