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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포장

by 고양이삼거리

어릴 적, 웃긴 나


우리 윤여사님은 요리하기에 진심이고 외식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짜장면, 탕수육도 집에서 만들어줄 정도였고, 나도 종종 그 옆에서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부스럭거리면서 김에 기름 바르고 소금 뿌리는 일을 도우며 소소한 부분을 담당하곤 했다. 소풍날 도시락도 거하게 싸주었기 때문에 층층이 담긴 도시락통에 가득 담은 김밥과 불고기 같은 맛있는 요리들을 풀어놓고 먹었다. 그 와중에 조금 괴팍했던 나는 어느 날 포장된 김밥 한 줄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는 개구쟁이 같은 친구가 무척 자유롭고 멋져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니! 하는 나만 모르던 신 세상과 문물을 마주한 것 마냥 이상한 방향으로 눈이 뜨였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가 그다음 소풍에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엄마 그런 게 있어, 도시락 통에 넣지 않고 김밥을 종이 같은데 싸는 거야. 그러면 내가 껍질을 까면서 먹으면 되는 거지. 젓가락도 필요 없어. 무겁게 통 가져가지 않아도 되고 돌아올 때 짐도 가벼워지는 거야, 이런 건 몰랐지?


이런 황당한 소리를 듣고 윤여사님은 별말 없이 그날 도시락을 쿠킹포일에 싸서 만들어 주었고, 나는 우리 가족들이 모인 돗자리에서 벗어나서 김밥을 손에 쥐고 자유를 만끽하며 점심을 먹었다. 지금 나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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