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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 소고기뭇국

by 고양이삼거리

무 오 센티 높이 한 덩이

파 흰 줄기 두 대, 마늘 두 쪽

소고기 일백 그람 정도

고춧가루 두 큰 술, 청양고추 두 개

소금 약간, 멸치액젓 약간, 간장 한 스푼

올리브오일 한 스푼

삼인분, 물 깊은 국그릇으로 네 번


무를 오 센티미터 높이로 썰고, 나박하게 썹니다.


( 나박하게 썬다는 건 타닥타닥 짧게 채치는 것이 아니고 툭툭 써는 것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덩어리지게 무심히 잘라내는 건 아니고 나무 도마에서 나박나박 소리 나게 한쪽 덩어리와 다른 한쪽과의 비율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비등비등한 ‘툭’ 얇은 존재감의 ‘시잉’ 그 사이 미약해 보이지만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가지고 있는, 이건 ‘bar 바’ 보다는 ‘sheet 시트’에 가까운데 ‘도톰한’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모지게 썹니다. 나박함을 다른 재료에서는 느끼기 어렵고 특히 ‘무’에서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하얗게 겉과 속이 한 통속인 식물세포의 구조와 밀도와 질감, 적절한 수분 상태에서 칼과 도마가 만나는 순간. 나박김치도 떠오르네요, 절묘합니다, 아무튼. )


파 흰 줄기 부분을 삼등분 툭툭 썰어서 넓게 채 칩니다. 고기를 먹기 좋게 결 반대 방향으로 짧게 끓어서 썹니다. 냄비에 고기를 넣고 소금 뿌려 간을 하면서 볶다가 올리브오일을 약간 뿌리고 다진 마늘도 같이 볶습니다. 마늘이 타지 않게 잘 익으면 파를 넣고 멸치액젓, 간장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과감하게 두 큰 술 넣어서 살짝 볶고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청양고추를 넣어서 깔끔하게 매운맛을 줍니다. 3인분이어서 큰 국그릇 가득 세 번에 한 번 더, 해서 넣었습니다. 팔팔 끓입니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더합니다.


사실, 제가 근래에 끓인 얼큰 소고기뭇국은 뭔가 애매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몇 번 하다가 그다음은 아주, 맑은 국으로만 끓여 그릇에 담고 나서 고춧가루를 각자 뿌려먹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뭐가 문제인가 고민해 봤는데 마늘을 어떻게 넣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리고 재료들을 충분하게 볶아 익혀서 끓었나. 이 두 가지인데 이들의 공통된 이유는 단맛을 어떻게 주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성된 익은 것들의 단 맛을, 재료를 열로 익혀서, 구워서 주는 겁니다. 요즘 맑은국에는 마늘을 거의 넣지 않았는데, 파 육수 내는데 빠져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채소들 맛이 그대로 담백하게 우러나니까 마늘 없어도 괜찮네 하고 있었는데, 이 얼큰한, 매운, 소고기뭇국 영역은 마늘의 역할이 확실하니까 마늘을 꼭 넣고, 잘 넣어야 맛이 사는 것 같습니다. 보통 소고기뭇국은 아주 무를 오래 끓여서 맛을 냈고 마늘을 넣지 않았는데 매운 소고기뭇국에는 마늘이 확실하게 들어가야 아는 맛이 됩니다, 향신료로의 역할을 특별히 하는 것일까요. 몇 번 파로만 육수내서 얼큰 소고깃국을 만들었는데 약간 인스턴트 소고기탕면에 가까운데 알 수 없는, 빠진 것이 있는 맛이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나중에 마늘을 넣기도 했는데, 나중에 넣으면 또 생마늘맛이 너무 살아서 더 어색해졌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마늘의 역할은 고춧가루를 받쳐주는 단맛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고기 볶을 때부터 같이 볶아서 매운 기는 빼고 구운, 단 맛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늘을 많이 넣을 필요는 없고 두 개 정도가 적당했습니다. 이 단 맛이 미세하게 퍼지면서 고춧가루와 소고기뭇국 사이의 빈 틈을 메워주는 것이죠.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 저의 추측입니다, ㅎㅏ.


요즘 (폭발적으로) 소고기 요리를 하고 요리법을 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신경 쓰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상황과 맛이 딱딱 떨어지면서 예전에 잘 안되던 것들도 ‘그냥 얼른 하자’라고 생각하면서 툭툭 던졌는데 잘되는, 맛있는데 뭔가 한구석에 갸우뚱거리면서 평소랑 크게 다른 건 없었는데 왜 맛있어졌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뭔가 앗, 내가 이걸 이제야, 이렇게 만들어 냈다니 하는, 이렇게 작은 일에, 희열을 느끼는, 이런 복합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마미가 가져다주신 거의 4kg 이상 될 법한 (쌀 4kg과 비슷한 것 같아서) 질 좋은 소고기를 냉장고에 놓고 한 덩이씩 필요한 만큼 떼어 요리하면서 재료의 풍성함에 기댄 여유만만한 모습을 장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보통 필요한 만큼만 정육점에 가서 사 오는데, 그게 조금 귀찮거나 여의치 않으면 잘하지 않는 메뉴들입니다. 요리글에 너무 몰입했더니 본분은 어디 가고, 너는 지금 너의 작업을 잊어 가고 있어,라는 작은 속삭임도 함께 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재밌으니까 일단 하자, 싶기도 하고, 자중해야지 싶기도 하고.


얼큰 소고기뭇국

그릇 자리를 옮기면서 조금 흔들렸더니 그새 고추기름 자국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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