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꾀 오래 살았던 구식 빌라는 겉에서 보기에는 별 볼 일 없었지만 1층인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담장 너머 이웃 붉은 벽돌 건물 사이 화단의 나무가 우거져서 초록의 생기와 햇살이 담긴 아늑한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그게, 작은 집에 우리가 오래 살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 중 하나였는데, 다른 하나로 소박하지만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내부 마감이 있었다. 옅은 회색과 분홍이 어우러진 우아한 무늬의, 차분한 벽지에 따뜻한 흰색 페인트칠 된 나무 몰딩들과 창틀, 작은 각 타일이 드레인을 향해 완벽하게 구배 잡힌 욕실, 듬직한 현관의 화강석 재료분리대가 있었는데, 모노륨 바닥 장판은 이음새가 무늬에 맞춰 재단되었으며 벽과 만나는 부분은 각 잡혀 치켜 올라가고 코너 처리는 한쪽면을 보기 좋게 잘라내서 겹쳐 마무리되었었다. 약간 단단하면서 표면에 질감 있고 어두운 편이라 오염과 찍힘이 덜했다. 이런 평범한 재료들이 어우러진 의외의 손맛 나는 분위기에 집에서 실내 재료마감에 대한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었다.
우리가 잠시 살았던 언덕 위의 집은 더 오래된 옛 빌라지만 계단실을 사이에 둔 아파트형 평면으로 직사각 형태로 단순하면서 전면은 새시가 설치된 베란다로 트여있고 후면은 다용도실을 확장한 타입으로 집의 시선이 열리고 특히 전망이 좋았는데, 내부 마감과 새시는 새로 되어서 전반적으로 환하고 깨끗한 듯 보이지만 조금 들어가 보면 어느 순간, 마감공사를 온전히 새로 한 것도 아니고 원래 가지고 있는 집의 문법에 맞춰 세심하게 수리할 부분을 수선하지도 않고, 손 덜 가는 방향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었다. 바닥과 벽이 만나는 곳의 나무 걸레받이 위에서 벽지를 끊지 않고 (아마도 나무에 페인트 칠 하기가 번거로웠을 것으로 추정) 덮은 점, 문 하단의 나무 문지방을 제거하면서 바닥 문틀이 드러난 부분을 거칠게 마무리하고 바닥 레벨을 어설프게 맞추면서 장판을 들어 올려 실리콘으로 고정한 점이 그중 하나다. 특히 바닥의 수평이 잘 맞지 않아서 책장을 세울 때 하단에 패드를 몇 장이나 고였었다. 방과 거실 모두 같은 재료로 이어지면서 공간이 연속되는 효과를 가지긴 했으나 그 재료인 장판의 재질이 폭신하고 표면이 다소 약한 재질이라 쿠션감 있어서 편하고 방에서 사용하기는 괜찮았는데 의자가 올려져만 있던 자리에도 금방 자국이 남았다. 장판의 재질이 폭신한 감촉은 맨발로 생활하기에는 부드러운 감은 있는데 주기적으로 교체가 필요한 것 같고 벽과 만나는 곳, 접히는 부분 마무리가 어려운 점이 있다.
지금 집, 12-3년 전쯤 준공하여 모든 설비 부분에 있어서 교체를 필요로 하고, 다양한 필름재질의 무늬 마감 자재가 시공되어 있는, 그중 강마루 바닥에 대해 살펴보려고 나의 지난 집들의 기억과 자재 샘플들을 떠올리고 있다. 오랫동안 교체하지 않고 잘 사용해 온 깔끔한 자재들의 내구성은 증명되었으나 필름 탈락이나 벗겨짐 같은 소소한 수리를 요하는 곳들이 보인다. 바닥은 레이저 레벨기를 사용했을 것이므로 수평, 수직이 잘 맞아서 책장들이 딱 맞춰 들어갔다. 내가 이 노트를 남기는 이유는 사실 그런 것들이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바닥 표면에 대한 감각이다. 단단하면서 매끈한 민-무늬에 대해 내 발이 느끼는 감각과 무엇이든 만나면 촤르르 소리를 내고 마는 자재에 대하여,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모르게 똑- 또르르르 작은 플라스틱 볼이 굴러가면서 표면에서 찰랑거리는 소음에 대하여 속수무책으로 며칠을 보내고는, 마음을 비우고 우리 집 모든 움직이는 지지대 달린 것들에, 바닥에 놓인 것들에 소음방지 패드를 붙이고 식탁아래에 매트도 깔고 나서 남의 집 소음에도, 우리 집 소음에도 조금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건 생활 방식의 변화를 필요로 했다.
다음에 이어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