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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글쓰기 61일째] 발이 건강해야 한다!

영양크림 듬뿍 발마사지

올 가을에 두 번째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가고 싶었다. 책을 내고, 다큐멘터리를 한 편 더 하고 교통사고 소송이 끝나 보험금을 받으면 가려고 했던 것인데 그 꿈을 접고 나니 그 길이 더 많이 그립다. 판데믹이 끝난다 해도 다큐멘터리가 불투명해지거나 미뤄질 것 같고 항상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야 하는 프리랜서의 경제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나의 또 다른 별명은 페레그리노(peregrino : 순례자) 닥터(doctor : 의사)였다. 길을 떠나기 전부터 순례길에서 가장 큰 복병은 발에 생기는 물집이라 말한다. 물집을 걱정한 나는 매일 양말을 벗고 쉬었고 저녁에는 발에 바세린을 듬뿍 발라 마사지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발을 마사지하며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니 신기하다.


길의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하루 앞둔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에서 한 여자가 내게 발마사지를 부탁했다. 친한 친구들에게 가끔 발마사지 해주는 나를 보며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페레그리노 닥터로 불린다고 했다. 매일 발마사지로 물집이 하나도 안 잡혔고 체한 사람의 손도 따주었기 때문에.


내가 워낙 잘 체하기 때문에 나는 바늘과 실을 가지고 다녔고 체기가 있으면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눌러 지압을 하고 혼자 내 손을 잘 딴다. 외국인들은 어떻게 체했는가 아는지 신기해했다. 그래서 돌아가며 한 사람씩 엄지와 검지 사이 오목한 부분을 눌러 보며 넌 괜찮아, 넌 안 좋아, 하고 구별해 말래 주었다. 정말 한 사람이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하다며 자기의 손을 따달라고 했다. 이건 동양, 한국적 방식이고 피가 나온다고 해도 괜찮다며 해달라기에 손을 따주었다. 손을 따자마자 끄윽~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 검은 피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그들이 얼마나 놀라던지. 난 얼른 안 체한 내 손을 따서 비교도 해 주었다. 덕분에 난 페레그리노 닥터였다.


최근 발마사지를 한 적이 있나? 생각해보니 없다.

하긴 만보를 걸어본 것도 한참 전이다 신발을 한 번도 안 신고 지나는 날이 대부분이다


오늘은 108 글쓰기를 마치고 반신욕을 한 다음 내 발을 마사지해야겠다. 매일 제일 아래에서 수고한 내 발에 비싼 영양크림도 듬뿍 발라서!

수고했어, 내 발 _묵시아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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