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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글쓰기 62일째] 108배 하기 좋은 매직타임

하루의 시작은 언제일까?

새벽 1시에 하루를 시작했다. 두통과 불면으로 계속 잠이 들쑥날쑥하다 원고 하나를 넘기고 나니 긴장이 풀렸을까? 24시간을 잤다. 중간에 깨서 점심 먹고, 다시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이와 이렇게 된 거 그냥 오늘 하루는 쉬자, 생각하고 소설책을 집어 들었는데 30페이지나 읽었을까, 불도 켜놓고 또 잤다. 소설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잠이 고팠던 모양이다. 그렇게 24시간이 지나 새벽 1시에 일어났다. 더 이상은 잘 수가 없어 일어나 108배를 했다.


108배를 하기 좋은 시간은 하루 중 언제일까? 어떤 사람은 새벽 4시에 일어나 108배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냥 일어나 눈뜨면 그때가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처럼 새벽 1시에 시작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오후 2시나 저녁 7시가 되기도 한다. 부족한 잠을 몰아서 잤으니 며칠은 또 괜찮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2019_0605_san 215_6.jpg 개와 늑대의 시간엔 구름이 개나 늑대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내게 108배를 하기 좋은 매직 타임은 없다. 매직 아워, 매직 타임이란 촬영에 필요한 태양빛은 충분하면서도 인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명 혹은 황혼의 시간을 말한다. 대기는 파랗고 그림자는 길어지며 태양은 노란빛을 발산한다. 따뜻하면서도 낭만적인 느낌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주 짧다. 한 때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스무 살 시절, 인문대 2층 베란다(현관 위 삐죽이 나온 공간)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바쁘게 지나가는 교수님과 학생들, 농구나 족구를 하는 소음, 언젠가는 등나무 아래에서 팬플룻으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주제가 Childhood Memories를 부는 소리를 들은 날도 있다. 지금도 그때의 공기, 그때의 소리와 빛, 그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때가 있다. 선배나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병든 닭’ 같다고, 왜 그렇게 코를 빼고 앉아 있느냐 했다. 그때의 나는 너무 바빴다. 대학생이 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미친 듯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으며, 성당 주일학교 교사, 학생회 활동, 연애까지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 모든 것에 의욕적으로 몸과 마음을 던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루 해가 질 무렵의 그 시간, 홀로 조용히 앉아 멍한 시간을 나는 “충전의 시간”이라 했었다. 나는 그 시간을 twilight blue의 시간이라 명명했는데, 그것은 또한 내 브런치의 주소고, 내 아이디 중 하나다.


요즘은 하루를 시작하며 108배를 하는 시간,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 그리고 모닝페이지를 쓰며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말이나 끄적이는 시간이 내게 충전의 시간이고, 매직타임이다.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 자료로 읽는 책이 아무리 많아도 그건 일인 것처럼. 일이 아니고 오로지 나를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파란 대기, 따뜻한 태양빛.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아주 짧은 낭만적인 시간’을 다시 즐겨야겠다. 오늘은 하루가 아주 길 것이다. 저녁 6시 49분에 해가 진다. 그런데 일몰 시간을 확인하려 어플을 켜보니, 그 시간에 비올 확률이 90%란다. 흠, 오늘은 매직타임을 즐길 수 없겠구나. 비가 오면 목과 허리도 더 쑤시고 아플 텐데. 하긴 낭만적인 시간을 언제나 즐길 수 있다면 낭만적이지 않겠지. 오늘은 새벽에 홀로 108배를 하고 일기를 쓴 것으로 만족하자. 곧 여명을 맞이하며 108배를 하고 일몰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을 Perfect Day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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