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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글쓰기 63일째] 불면 실험 :아무 때나 자자

하루 두 번 자는 실험


아무리 뛰어난 의견이라 할지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 프란츠 카프카


이틀 연속 새벽 1시에 일어났다. 어제 새벽 1시에 일어나 책상 앞을 지키다 오전 10시경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났고, 다시 초저녁에 잤다. 밤 10시쯤 엄마가 왜 그렇게 자느냐고, 어디 아프냐고 하는 말에 깨서는 잠결에 괜찮다고 대답하고 또 자서 눈을 뜨니 새벽 1시다. 잠깐 고민하다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이명 때문에 진료를 받다가 불면증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지 7-8개월 됐다. 이 달 들어 수면제를 먹으면 20시간 12시간 자는 것에 놀라 잠깐 수면제를 끊었다. 다시 진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진료예약이 쉽지 않다.


108배를 하면 다양한 생각이 떠오른다. 숫자를 자꾸 까먹는 이유 중 하나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두는 게 내 방식이다. 대개는 108배 일기를 어떻게 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오늘은 정신건강의학과 두 번째 진료 때가 생각났다. 내가 방송작가고, 지인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으며, 아는 PD가 수면증 의존과 수면장애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 내게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수면극복에 대한 일반적 방식을 쭉 읊었다.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려하고, 규칙적인 수면에도 노력이 필요하며, 너무 자려고 의식하지 않고 잠자리에 누워서 30분 이상 잠을 못 자고 뒤척이면 차라리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하거나 소파에 널브러져 편하게 쉬든가, 음악을 듣던가... 등등.


의사는 내가 수면과 불면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불면을 고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잠에 대한 강박을 없애기 위해 아예 졸릴 때 자고 잠이 오지 않으면 억지로 자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극단적 처방은 어떠냐고 했다. 그것도 해봤지만 그래도 일은 좀 해야 하고, 외부 미팅이 있는 날과 마감이 있어 쉽지 않다고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좀 다르다. 1월부터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 중이었고, 코로나 19 사태 이후 자발적 자가 격리 중이다. 프리랜서로 글을 쓰기 때문에 항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은 신규 프로젝트가 뚝 끊겼다. 외부 미팅도 1-2주에 하루 정도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스케줄과 마감이 조정 가능하다.


그래서 해 보기로 했다. 졸리면 자고 알람을 맞추지도 말고 일어나면 활동을 해 보자. 새벽 1시에 일어나든 아침까지 쭉 자든 그냥 눈뜨면 일어나고 졸리면 자자.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든가 세상 시간에 맞추지 말고, 배꼽시계처럼 내 몸의 시계에 맞춰 잠을 자자. 어제처럼 또 아침이나 낮에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졸리면 그렇게 하지 뭐. 우선 엄마를 이해시켜야겠다. 아픈가 걱정하시니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별명에 “또자”였다. 낮잠을 자주 잤다. 학교 다녀오면 피곤해서 잤고, 동네 친구들이랑 뛰어놀면 피곤해서 잤다. 아파도 잤고,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잤고, 밥을 많이 먹으면 배불러서 잤다. 어떤 날은 숙제도 안 해 가서 학교에서 급하게 하기도 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어떻게 머리를 환기시키느냐고 물어본 감독이 있었다.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발주한 감독이었다. 난 “자요”라고 대답했다.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 글을 쓰다가 갑자기 음식에 대한 글을 쓰려면, 별자리를 이야기하다가 다시 다큐멘터리 자막을 써야 하는데 머리가 휙휙 전환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중간에 잠깐 포즈를 주기 위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 잔다. 자고 일어나서 커피를 새로 내리고, 컴퓨터를 새로 켜고 다시 출근하는 기분으로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원래 나는 낮잠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글을 썼는데 오후 2시에 퇴근해 낮잠을 자고 밤늦도록 글을 썼다고 한다. 하루 두 번 자며 투잡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다. 밥벌이(Brotberuf, 브로트베루프)를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


졸릴 때 자자. 불면에 대한 극단적인 처방이지만 자려고 노력하다 못 자면 시간만 버리고 두통과 이명만 심해져 더 예민해진다. 수면의 질도 낮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잠 못 자서 죽은 귀신은 없다. 졸릴 때 푹 자고 일어나면 마음도 좀 편해지겠지.


108배를 시작할 때도 그냥 무조건 시작했다. 잠에 대한 극단적 실험도 오늘부터 일단 시작해 보자. 오늘부터 딱 일주일 동안 매일 잠자는 시간을 기록해 보면 어떤 패턴이 나오겠지. 카프카도 말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을 실천하고 글로 옮겨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오후 산책하며 사진찍기 놀이도 다시 시작해야지!



대신 오후에 산책을 나가자. 햇볕을 보면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닌 호르몬이 억제되고, 밤 시간에 분비되어 숙면을 취할 수 있다니까. 원래 팔다리에 근육이라고는 1도 없는데 요즘 외출도 하지 않고 외출을 해도 차로만 다니니 그나마 있던 종아리 근육도 다 빠져나간 기분이다. 그래도 108배를 하면서 허벅지에 근육이 붙는 기분이다. 오후에 광합성도 좀 하고 걸어야겠다.


오늘은 날이 맑다고 한다. 어제는 오후 5시경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보류했는데 지금에서야 비가 온다. 요즘 기상청은 날씨 예보가 아니라 날씨 중계를 하는 것 같다. 오후에 비가 오면 우비 입고 우산 쓰고 나가면 된다. 뒷산은 공원이라서 우산 쓰고 걸어도 충분하다. 비가 오면 숲의 냄새가 더 짙어져 좋겠지.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여명에 108배로 하루를 열고

황혼에 산책을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정상적(?) 패턴으로 살아질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노력해서 안 될 것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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