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나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양을 둘러싼 모험>을 쓰던 때부터)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습관처럼 해왔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어제는 극심한 두통에 오심까지... 며칠 불면으로 고생한 끝이 아주 안 좋았다. 오후 늦게 일어나 모닝페이지와 108배 루틴만 겨우 하고는 약을 먹고 억지로 잤다. 초저녁부터 충분히 자고 일어나니 이제 좀 살 만하다. 머리가 맑고 개운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100미터 기록이 18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나마 정확하지 않다. 덕성여고를 다녔는데, 요즘 안국동 감고당길로 유명한 곳, 한때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공유가 지은탁, 김고은을 처음 만난 돌담길이 예쁜 그 길을 걸어 다녔다. 서울 종로 한 복판에 있는 학교라 운동장이 좁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려면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뛰거나, 테니스코트 안에서부터 뛰어야 했는데 앞으로 슬금슬금 나와서 출발했다. 94학번이라 수능을 두 번 본 불운한 우리는 대신 유명무실한 대입 체력장이 사라져 체육을 거의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새 학년에 올라가면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를 항상 달리기 선수로 뽑았다. 키가 크고, 팔다리도 긴 편이며, 빼짝 마른 몸이 달리기를 잘하게 생겼다고 했다. 그들의 오판은 하루도 안 되어 바로 수정됐다. 난 체육을 정말 못했다.
중학교 때는 체육시간에 나가지를 않았다. 1학년 때는 코피 때문에 토요일마다 조퇴하고 병원에 다녔고, 2학년 때 생리를 시작하고 생리통이 너무 심해,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할 때마다 담임 선생님이 배려를 해줘서, 집에서 쉬었다. 아침 조회 시간에 등교했다가 집에 와서 종일 자고 종례시간에 가방을 챙겨 하교했다. 체육 선생님도 그냥 운동장 한쪽에서 놀게 하거나 주번과 바꾸어 아예 나가지를 않았다.
중3 체육시간에 조금 뛰었다. 고입 체력장 점수 20점을 위해서. 난 어차피 상관이 없으니 포기하려 했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이 가만 놔두지를 않았다. 윗몸일으키기를 50개쯤 해서 유일하게 잘했고, 100미터 달리기, 멀리뛰기, 던지기는 참가점수만 받았다. 매달리기는 친구들이 요령껏 받쳐주어 최대한 버티었고, 운동장을 4바퀴 돌아야 하는 800미터 오래 달리기는 친구들이 양쪽에서 붙잡고 뒤에서 밀고 해 겨우 완주시켜 주었다. 이미 점수가 높아 달리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이 날 위해 뛰어주었다. 그때 그 친구들에게 고맙다.
고등학교 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입 체력장이 없어져 체육을 거의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가 체육시간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왼손 공기 챔피언뿐이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좌뇌 우뇌의 고른 발달을 위해 왼손을 잘 써야 한다고 체육 시간에 공기 대회를 했을 때, 내가 왼손 공기를 좀 잘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을 열심히 했다면 내가 운동과 좀 친해졌을까 싶어 아쉽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에서 밝혔듯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한다고 한다. 그는 “일 년에 한 번은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고 철인 레이스에도 참가”했다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 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라고 말한다.
그 책을 읽을 즈음 나는 본격적으로 재택 근무자가 되었다. 워낙 프리랜서였지만 그래도 방송국이나 프로덕션에 출근해 일을 할 때가 많았는데 미팅만 하고 원고 작업은 집에서 하기 시작하면서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그의 말처럼 “러시아워에 지하철을 한 시간씩 타는 것에 비하면 나 좋을 때 한 시간 남짓 달리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퇴근이 없으니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신발도 안 신는다. 집이니 편한 옷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만 있어도 때가 되면 배가 고파 밥을 먹는다. 그러니 살이 찌기 쉽다. 직장인의 출퇴근을 생각하면 하루 한두 시간의 시간은 낼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에 산을 가기도 했고, 한동안은 뒷산에 매일 가 일몰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강 근처에 살 때는 아침 운동을 나가기도 했다. 요즘은 집에서 108배를 한다. 40분 정도의 운동이지만 사실 이마저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 56일째가 되니 루틴이 되어 거의 매일 하고 있다. 날이 좋아지면 뒷산에 올라가 일몰 사진을 다시 찍으려 했는데 벌써 봄이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하루키처럼 뉴런 운운하지 않아도 몸과 영혼은 연결되어 있다. 또 달리기나 운동을 매일 지속하는 것은 근력, 지구력과 관계가 있다. 어느 춤꾼이 말했듯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파트너가 알며 삼일을 쉬면 모두가 안다.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은 쉽게 배반하지 않는다. 올해 나의 목표는 108배와 모닝페이지를 꾸준히 쓰는 것 하나로 정한 이유가 그것이다. 매일 운동을 하고 매일 글을 쓰는 것! 이 목표다.
육상 선수라면 “난 어제 뛰었어. 그러니 오늘은 워밍업을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은 달리기를 위해 매일같이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한다.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한때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감기에 걸려 사랑하는 그에게 옮겨서도 안 되고, 감기 때문에 그를 볼 수 없으면 안 되니까. 프리랜서에게는 건강도 능력이다. 내가 아프면 누구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고, 혹시 누가 대신할 수 있다면 그 일은 내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요즘 코로나 19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발적 자가 격리를 심하게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맡은 일을 못하면 안 되니까 코로나에 걸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한다. 며칠 불면과 두통으로 고생이 심했다. 직업으로 글을 쓴다 함은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내 건강도 능력이고 내 책임이다. 회사가 직원의 건강검진을 하고 스케줄을 체크하듯, 내가 나의 건강을 챙기고 스케줄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니 건강하자!
이번 생은 작가로 살기로 정했으니
건강하게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108배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굿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