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8배 글쓰기 55일째] 야행성 점조직, 굿나잇 클럽

불면, JTBC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원작 소설을 읽다

“글세… 잘 자면 좋으니까.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일하고 쉬고, 그리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니까.”

“인생이 그게 다야?”

“그럼 뭐가 더 있나? 그 기본적인 것들도 안 돼서 다들 괴로워하는데.”

- 이도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날씨가 좋으면, 목련 꽃 그늘 아래서 편지를 쓰고 싶다! (옥천 중봉 조헌묘지의 자목련)


새벽 1시는 어제의 연장일까, 오늘의 시작일까?

해가 있을 때 깨서 활동하고 해가 지면 자는 게 좋다는 말에 따르면 잠자는 게 좋은 시간. 내게는 보통 잠들기 전의 시간. 그러나 오늘은 자고 일어난 시간.


원고를 써서 만나야 하는, 중간 점검 미팅이 있었다. 오전 10시 반 약속이라 새벽 5시까지 작업하고 3시간만 자야지 했는데 오전 미팅에 대한 불안, 잘 준비됐나, 아직 부족한데 하는 걱정, 아!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칠까? 갑자기 떠오르는 문장들, 앞으로의 일정 변경은 어떻게 의논할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결국 침대만 지켰을 뿐 거의 한숨도 못 잤다.


108배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운전을 하려니 불안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대중교통은 피하고 싶고, 우리 동네 확진자가 택시기사였다 하니 택시도 못 믿겠고, 그냥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미팅 겸 인터뷰하고 점심을 먹고 2차 미팅도 한 자리에서 해결해 일을 마친 것이 2시 반 정도다.


너무 졸려서 한의원 추나 치료도 패스하고 집으로 오는 길, 창문 열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졸음을 참으며 운전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하긴 거의 열흘 만의 외출이다. 내부순환도로에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

“집에 가고 있는데..”

“오늘 내 생일이라고 시아버지가 밥을 산다는데

엄마 아빠 모시고 올 수 있어?”


2초 간의 침묵...


“일단 집에 가 있어. 내가 연락들 해보고 전화 다시 할게.”


내 상황을 설명할 겨를도 없이 언니의 전화가 끊어졌다. 미나리삼겹살 번개를 하던 날이

마침 작은언니 음력 생일 전날이라 키조개 미역국도 먹이고 축하도 했는데... 결혼하고 첫 생일이라 며느리 챙겨주고 싶어 하는 사돈 어르신의 마음은 고마운 것이고 내가 피곤하다고 부모님을 대중교통 타고 가라 할 수는 없고 하 이거 참.


주차장에 도착해서 보니 카톡에 형부가 응암동 갈빗집 주소를 보내 놓았다,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손만 씻고 잤다. 깜빡.... 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딱 한 시간이 지났다. 부랴부랴 화장을 고치고 헝클어진 머리를 질끈 묶었다. (형부는 나보다 더 나의 헤어스타일, 옷, 뾰루지와 뱃살에 관심이 많다. 용돈도 주는 형부니까 잘 보여야 한다.)


퇴근시간이라 막히는 길을 한 시간 운전해 가서 돼지갈비를 푸짐하게 먹었다. 줄 서는 맛집이라더니 맛있고 싸고 줄은 안 섰지만 사람은 가득했다. 다시 엄마와 폭풍 수다로 잠을 쫓으며 집에 오니 9시 반. 세수하고 보이차 한 잔 마시고 잠이 달아날까 봐 얼른 누웠다. 이불도 빨아 뽀송뽀송 좋은 냄새가 난다. 꿀잠을 잘 거야~


또 깜빡~ 기분도 상쾌하게 일어났는데 엥? 1시간이 지났다. 아니야, 아니야 난 더 잘 수 있어, 더 자고 싶어. 첫 잠을 깨고 나면 잘 못 자는 나지만 1시간 만에 일어날 수는 없잖아. 다시 자려고 공유의 베드타임 스토리를 틀어놓고 눈을 감았으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가로등의 별처럼 빛나는 런던의 밤거리 화이트 노이즈와 공유의 목소리를 한 시간 풀로 다 들었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일어난 게, 새벽 1시다.


수면제를 먹을까 하다가 그냥 일어나 의식의 흐름대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벌써 불면에 대한 생각이 한가득이었으니까.


나는 잠에 예민하다. 그래, 인정한다. 불면증에 대처하기 위해 따뜻한 우유, 생강차도 마셔봤고 두뇌에 몰린 피를 다리로 보낸다고 엄지발가락에 힘도 좀 줘봤다, 모두 실패! 그 좋아하는 커피도 아침에만 마신다. 양도 세어봤다. 그러나 나의 양은 늘 울타리에 걸린다. 양은 영어로 ‘sheep’이고 잠은 ‘sleep’이니 잠이 안 올 때 양을 세는 것은 양의 몽글몽글 따뜻하고 하얀 이미지가 아니라 발음의 유사성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 사람은 양이 아니라 잠자리를 세야 한다. “잠자리 한 마리, 잠자리 두 마리, 잠자리 세 마리....” 내 잠자리는 하늘을 날다 채에 잡히고, 날개가 찢어져서 실패! 미 해군 2분 만에 잠드는 방법 : 머리부터 눈, 코, 잎, 턱.... 다리까지 온몸의 힘을 뺀다. 해먹에 누워 바람에 흔들, 가장 편하고 행복한 순간을 떠올린다. 흔들의자도 싫어하는데 해먹은 뒤집어질까 두려워 실패! 내가 잠자리에 누워서도 턱과 어깨에 이렇게 힘을 주고 있었다고! 놀라웠고, 덕분에 힘을 좀 빼려 노력하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냥 나의 불면은 불면이 아니라 예민한 것에 불과했다. 교통사고 이후, 이명과 함께 시작된 수면장애를 겪기 이전까지는.


잠 못 자서 죽은 귀신은 없다고 한다. 야행성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잖아. 모 여배우는 이틀에 한 번만 자도 건강미인 소리 듣는데 뭐. 그러나 내 귀에 심장이 하나 더 생긴 듯, 이명이 들려오니 잠을 자기 괴롭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비인후과와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 혈액순환제, 기분 좋아하지는 약(?, 이게 뭐라 하더라) 등등을 먹고 상담을 한다.


잠자리에 예민해서 내 방에서 침대 위치만 바꿔도 일주일은 잠을 설치고, 자려고 하면 무소음 시계의 초침 소리와 전류 흐르는 소리까지 듣는다. 소머즈 귀를 가진 내게 이명은 청천벽력, 잠을 설치는 것은 기본이요, 일단 잠들기 힘들고 첫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 수 없으며 깊은 잠을 못 자 머리가 멍하다. 어떤 날은 꼬박 밤을 새우고 어떤 날은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으면 갑자기 몰아서 잔다.


아무리 매일 출근하지 않는 프리랜서여도 미팅이 있고 마감이 있다. 한 번은 목요일 오전까지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수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4개의 미팅을 하고 피곤해서 9시에 수면제를 먹고 잤다. 다음 날 오후 4시에 일어났다. 다 쓰고 점검만 해서 보내면 되는 원고였지만 오후 4시라니. 결국 출판사에 연락해 마감을 하루 미루었다. 나의 첫 책은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다.


의사들도 곤란해한다. 잠들 때 소리에 민감한데 이명이 들리니 잠을 못 자고 잠을 못 자면 이명은 더 심해진다. 게다라 목디스크도 심한데 이 세 가지에 두통이 서로 악순환 중이다.


이명 치료를 위해서는 항상 소리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낮에 일할 때도 음악을 틀어놓거나 라디오, 화이트 노이즈 등 소리가 있어야 한다. 난 음악 따위 듣는 습관이 없다. 글 쓰고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일단 이명 치료가 우선이라 라디오나 화이트 노이즈 어플, 유튜브 음악 등을 틀어놓고 산다. 밤에는 김영하의 책 읽어주는 어플이 유효했다. 요즘은 공유의 베드타임스토리를 듣는다.


처음 이명 치료를 위해 신경안정제와 혈액순환제를 처방받아 먹자마자 몸에 발진이 나는 바람에 약을 쓰는 게 조심스러웠고, 약이 맞지 않아 처방을 바꾸다 겨우 맞는 것 같더니 또 듣지 않는다. 어떤 날은 수면제를 먹어도 안 먹은 것과 같고, 어떤 날은 갑자기 12시간, 20시간을 자니 무서워서 먹을 수가 없다. 코로나 19 사태로 병원 진료받기도 힘들다. 게다가 이비인후과 의사는 퇴직을 한다고 진료를 바꾸라 했으나 전화 연결이 안 됐고, 신경정신과 진료일에는 밤낮이 뒤집어져 자느라 시간을 놓쳤다. 다시 진료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 놈의 병원, 맨날 통화가 안 된다. 오늘은 꼭, 병원을 예약해야지.


여기까지 쓰고 다시 잘까, 글을 쓸까 하다가 말랑말랑한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요즘 한창 방송 중인 JTBC 드라마의 원작인 이도우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침대에 앉아서 다 읽어버렸다. 이도우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이유를 알지.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외면하고 싶으니까 모르는 척할 뿐이다.”

- 이도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두 번째 페이지, 이 문장에 밑줄을 긋고는 책을 들고 침실로 이동, 책 한 권을 다 읽은 게 아침 7시. 좀 뒤척이다 잠들어 일어난 것이 오후 3시. 108배를 하고 불면을 생각한다. 아, 힘들다.


소설 속 주인공 은섭이 말한 것처럼 잠만 잘 잘고 잘 일어나고 잘 먹고 그러면 좋겠다.

해원처럼 복잡한 머리를 단순하게 만들어줄 나의 은섭은 어디 있을까?


오후 늦게 108배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오늘에 대한 긴 변명!


*세상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야행성 점조직, 굿나잇 클럽 여러분

불면을 고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