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와 건강
요즘 마감 때문에 밤낮이 좀 뒤집어지고
피곤하기는 했다.
두어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침대만 지키다 일어나
몸이 찌뿌둥하고
콧물이 좀 나는가 싶더니 코피가 났다.
어렸을 때는 매일 코피가 났다.
아침에 세수할 때 시작해서 낮에 학교 수업시간에도
시도 때도 없이 코피를 흘려
교과서마다 피가 낭자했다.
덩어리가 나온 걸 본 엄마는
이 병원 저 병원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린이 대공원 근처의 한 이비인후과에 다녔다.
내 코 옆에 혈관이 내려와 있기 때문에
고개를 숙여 혈관이 눌리면 코피가 난다는 것이다.
* 얼마 전 이명 때문에 MRA와 MRI를 찍었을 때도 비슷한 말을 하길래
이미 알고 있다 했더니 의사가 좀 놀라더군.
어릴 때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만
코피가 너무 자주 나면 안 좋으니
혈관을 지져서(?) 올려준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이 좋았다.
토요일마다 2교시 끝나고 조퇴를 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조퇴증을 내밀고 교만한 수위를 지나쳐
교문을 나서는 짜릿함.
멀미를 해서 버스를 잘 타지 못했지만
그래도 혼자 버스를 타고 어딘가 다녀온다는 것이
어른이 된 듯 괜히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곧 질렸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하얗고 깨끗하기만 할 뿐 멋없는 인테리어
대기실을 가득 메운 우울한 표정의 아픈 사람들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고 기다란 꼬챙이로 내 콧속을
무자비하게 쑤시는 의사와
언제든 팔을 붙잡아 앉혀두겠다는 듯 옆에 서 있는 간호사
내 코는 낮고 작은 데다 콧구멍이 지나치게 큰 것이
다 그때 내 코를 너무 후벼놓아서라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교문을 나설 때까지는 좋았으나
버스를 탈 때부터 우울해지더니
진료 중에 급기야 솜뭉치가 뒤로 쑥 넘어가 버렸다.
의사는 이래저래 해보다가 일단 집으로 보냈다.
다음 날 의사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다 나를 바꿔주었는데
의사는 코에서 혹은 입에서 뭐가 나왔는지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의사는 그게 어떤 모양인지, 상태를 자세하게 묻더니
엄마를 바꾸라고 하고는 또 한참 통화했다.
엄마도 의사도 나의 거짓말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병원에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다음부터 나는 병원에도 가지 않았고
코피도 그전처럼 자주 나지 않더니
어느 순간 코를 때려도 코피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코피가 난 건
12년 전 처음으로 파리에 갔을 때였다.
13시간의 비행과 기압차 때문이었을까
파리에 도착해 세수를 하는데 코피가 쏟아졌다.
첫날 바토무슈(유람선)를 타고 센강의 야경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참고 쉬었다.
며칠 전부터 가끔 코에서 피가 설핏 비친다.
그러더니 오늘은 제법 피가 많이 나오니
슬며시 걱정이 된다.
영양부족인가? 면역력이 떨어졌나?
코 점막이 건조한가?
다음번 이비인후과 진료 가서 물어봐야겠다.
어쨌든 괜히 코피 때문에
오늘 108배를 하면서는 계속 코피 생각을 하다가
다시 12년 전 파리와 스페인까지 떠올랐다.
에잇 참나!
비행기 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