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와 정치적 올바름
17세기 영국 템스강이 얼어붙고, 에티오피아에 내린 눈이 1년 동안 녹지 않았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소빙하기(Little ice age)로 명명하였는데, 지구에 미치는 태양열의 양이 감소하면서 지구 온도가 약 1℃ 낮아졌다고 한다.
현대 지구온난화라 함은 지표 기온 관측이 광범위하게 시작되고, 산업화가 시작된 기준 해인 1850년 이후 전 지구 평균 지표 기온이 꾸준히 상승해 2017년 말에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1도 이상 상승한 것을 이른다. 그러니 17세기 1도가 낮아진 데 따른 지구의 데미지가 얼마나 컸을까?
유럽은 이 시기에 전쟁과 기아에 시달린 대위기의 시대를 거쳐 과학을 발전시켜 산업혁명을 이루고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럼 17세기 조선은 어떠했을까?
목숨을 잃는 재앙이 전쟁보다 심하여,
백만의 목숨이 거의 모두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으니
실로 수백 년 이래에 없었던 재난이었다.
- 실록, 현종 11(1670)년 10월 15일
1670(경술, 庚戌)년과 이듬해 1671년(신해, 辛亥)년까지 가뭄, 홍수, 지진, 냉해, 우박, 태풍, 전염병, 해충 등 온갖 자연재해가 팔도를 뒤덮었다. 자연재해는 기근, 전염병의 창궐로 이어졌다. 백성은 굶주려 죽고 병들어 죽었다. 성경에서 신이 내린 재앙 중 하나인 메뚜기 떼까지 등장했다. 임금의 다섯째 누이 숙경 공주가 천연두로, 병조판서 김좌명도 전염병으로 죽었다. 최악의 상황인 인육을 먹는 일이 보고됐으나 벌할 수조차 없었다.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은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고도 살아남은 노인들이 “전쟁 때도 이보다 나았다”했다니 전대미문의 대혼란이 얼마나 심각했을까 상상이 안 된다. (요즘 우리 부모님도 코로나 19 사태를 두고 6・25 전쟁은 난리도 아니여, 하신다.)
이때 조선의 임금은 18대 현종이었다. 나는 현종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예송논쟁과 온천 마니아였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경신대기근을 맞아 백성들의 구휼을 최우선으로 두고 진휼청을 기반으로 사회안전망 구축에 앞장섰다고 한다. 진휼청은 전쟁과 흉년 때 임시로 설치됐던 빈민구제기구였는데, 이를 상설 복지기구로 만들었다. 진휼 후에는 암행어사를 파견해 감찰하게 한 다음 승진시키거나 벌을 주었다.
군포 면제, 토지세 감면, 부채 탕감 등 실질적인 경제 지원책도 시행했다. 중앙 재정이 바닥나니, 왕실의 내탕금은 물론 관리의 녹봉까지 삭감하며 정부는 긴축재정에 들어갔다. 부자에게는 세금을 더 걷고 빈자에게는 세금을 덜 걷는 대동법을 호남의 삼군에 확대했다.
현종은 재위 초부터 예송논쟁에 휘둘렸으나, 그가 1차와 2차 예송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웠다
예송논쟁의 본질은 송시열이 현종의 아버지 효종의 정통성을 의심한 데 있으니 이는 곧 현종을 대놓고 무시한 것이었다 2차 논쟁에서 현종은 직접 논쟁하고 윽박지르며 송시열을 잠재우고 아버지 효종과 자신에 이르는 왕의 위엄을 되살린다. 숙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해 정치9단 송시열을 단숨에 날릴 수 있었던 것은 현종이 바탕을 깔아놓은 덕분이다. 이처럼 현종이 즉위 10여 년 만에 확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경신대기근이라는 국가적 위기, 자연의 재해를 대처하며 민심을 얻었고,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종도 하지 못한 것이 있다. 1671년 백성들이 굶어 죽는 이가 많아지자 형조판서 서필원은 청나라에 쌀을 수입하자고 건의했다. 신하들은 운반하여 오는 문제가 힘들다, 곡물을 빌린다 하더라도 6월 이전에 도착할지 알 수 없으니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국가가 남에게 부림받는 것은 면하지 못하더라도
어찌 양식을 청하여 살기를 바랄 수야 있겠습니까.
- 실록, 현종 12(1671)년 8월 8일, 민정중의 말
한 마디로 위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은 청에 1년 세폐로 쌀 1만 석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줄여 달라고 청하는 것이 어떤가 하자, 신하들은 역시 후환을 걱정하고 위신을 앞세워 반대했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너희 나라 백성이 다 굶어 죽게 되었는데 모두 신하가 강해서 그렇다'며 조선을 비웃은 것도 일리가 있다. 국익과 민생보다는 체면과 명분을 우선시하는 유학자 관료들은 전쟁이나 대기근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들을 현종도 이기지 못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할까, 걱정이다. 코로나 19 사태와 총선 관련 뉴스를 보다 현종 대의 민정중 같은 이가 떠올랐다. 과연 민생보다 명분이 중요한 것이 정치일까? 자신들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정치놀음은 이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대의 정치는 달라야 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가는 그냥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야.
네가 먹고 입고 말하는 모든 것의 문제지.
조심하지 않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야!
- 영화 <PCU>(1994) 중에서 (넷플릭스 익스플레인드 : 정치적 올바름에 관하여 재인용)
요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 익스플레인드를 즐겨 본다. 짧은 시간에 에센스를 잘 정리해 주어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게 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관하여”를 봤는데 흑인을 표현하는 단어가 미국 내에서 Negro → Black → African American으로 변화하고 여성의 호칭이 Miss와 Mrs에서 Ms로 바뀌는 것을 예로 들며 누가 이것을 결정하느냐 묻고 “문제가 바뀌고 새로운 집단이 힘을 얻으면서 이들은 사회가 표현, 상징, 전통을 다시 생각하도록 몰아붙인다”라고 정리한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이란 힘의 논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그때는 틀렸으나 지금은 맞는 경우가 계속 발생한다.
현종의 아들 숙종 때에도 대기근이 있었는데 숙종은 중국에서 곡물을 빌려왔다. 그는 환국정치로 조선 시대 최고로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으니까!
코로나 19 사태가 처음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이에 대한 명칭, 위기 단계 설정에 대한 논란, 판데믹 선언에 대해서도 시기 문제 등이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이유... 누구 한 사람이 정리해줄 수 없고 그에 따른 정치적 해석과 집단 간 이해가 상충된다.
그러니 돌고 돌아 다시, 투표를 잘해야겠다!
정치는 내가 먹고사는 모든 문제와 얽혀 있으니까.
혼자서 아무리 108배를 열심히 해도
결국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사람과의 관계, 사회 경제 모든 문제는 정치로 귀결되니 투표를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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