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말하는 창의성
만약에 내 작품을 위해 하늘이 내려준 괴상하게 생긴
지니어스가 내 노력을 통해 단 한순간이라도 경이스러운 것을 보여준다면
더 말할 것 없이 올레(olé)이고
지니어스가 나타나지 않아도 네 춤은 네가 춰라
그리고 어쨌든 너한테 “올레”라고 외쳐라
-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테드 강연 중에서
https://www.ted.com/talks/elizabeth_gilbert_your_elusive_creative_genius?language=ko#t-488704
어떻게 전업 작가로 20년을 살았죠?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는 더 대단해 보인다. 어떻게 매일 아침 8시나 9시에 출근을 할 수 있지? 지옥 같은 지하철이나 꽉 막히는 도로 정체를 참으면서 말이다.
요즘 많이 듣는 말은 어떻게 집에서 일을 해요?라는 말이다. 재택근무를 해보니 일과 관리도 어렵고 소통도 안 되고, 가족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아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한다. 다시 나의 대답은 똑같다. 사무실의 책상에 앉아 하루 8시간을 어떻게 버티니? 그게 더 대단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다가 데몬의 설명을 보고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테드 강연이 떠올랐다. 악마(devi)의 어원인 데몬(demon)은 귀신이나 수호신, 악마 등을 의미하지만 본래는 초자연적 영적 존재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다이몬이었다. 소크라테스도 데몬이 자기에게 지혜의 말을 해준다고 믿었단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불가해한 운명의 힘은 모두 다이몬이 일으킨 것이라 생각했다.
줄리아 로버츠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 이혼하고 글도 안 써지고 슬럼프를 넘어 삶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때 기막힌 기획서 하나로 출판사의 계약금을 받아 여행을 떠난다. 맘껏 먹고 놀면서 쓴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게다가 여행 중 만난 사랑과 결혼까지 한다.
원작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실화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한때 수많은 작가들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로망은 로망일 뿐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게다가 이미 누군가 했던 것이므로 새롭지 않아 성공 가능성이 없다. 언젠가 슬럼프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을 때 친구가 그의 테드 강의를 권해주었다. 그녀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기록적인 흥행 후 그다음 책을 내놓기 전에 강연을 했다. 제목은 "창의성의 양육"
그는 베스트셀러 그 다음 작품에 대한 두려움, 슬럼프와 우울증, 작품 스트레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먼 과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 선배들의 지혜를 소환했다. 그리스에서는 ‘다이몬’, 로마에서는 ‘지니어스’라 불리는 신성한 혼, 창의적 혼이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작품의 결과도 정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되어도 잘못되어도 모두 그들-데몬이나 지니어스의 탓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어떤 예술가가 지니어스를 가졌다고 말하지 않고 그 예술가가 지니어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많은 예술가들이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스트레스 등으로 죽어갔다. 작품이 성패가 온전히 개인에 달려 있고 그 책임도 그들의 것이므로.
그녀는 왜 화학공학자에게는 슬럼프나 우울증을 묻지 않고 작가나 예술가 등에게만 묻는가 되묻는다. (사실 요즘은 화학공학자든 과학자든 창의성이 필요없는 일이 있을까?)
대부분의 작가들은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일을 한다. 그냥 하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며 무엇이든 읽고 쓰고 또 읽고 쓴다. 다이몬이나 지니어스 같은 요정이 나타나건 나타나지 않건 그저 묵묵히 직업으로서 자기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혹은 눈앞의 상사나 동료 대신으로 다이몬이나 지니어스와 함께 일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그들의 도움으로 정말 글이 잘 풀려나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들이 사라져 하루 종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그러다 쓴 글보다 지운 글이 더 많은 날도 있다. 사장이 보고 있지 않아도 일하는 사장이 보고 있다 생각하고 일하는 것처럼 지니어스가 오든 안 오든 그냥 내 할 일을 해야 한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을 바라보며 수년 동안 저스트 두 잇(Just Do It)하는 것처럼! 코로나 19 사태로 올림픽이 연기되는 것이 개인의 불운이 아닌 것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냥 계속해야 한다. 데몬의 도움이 있어도 없어도 오늘은 오늘 내가 쓸 글을 쓰는 것이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사실 아직도 힘들다. 매일 일과와 일어나는 시간이 들쑥날쑥하니까. 그런데 직장인은 안 힘들까? 모든 직업은 자기 일이 되면 힘들고 지겹고 남의 일은 대단해 보이는 것이다.
108배를 하고 아침 루틴을 만드는 것도 ‘저스트 두 잇!’ 하기 위한 시도고 노력이다. 그래도 108배에 일희일비는 해도 오늘치의 글을 다 쓰지 못한 것에는 일희일비 안 하려 한다. 사실 요즘은 108배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있다. 글이 잘 써지는 기분이 드는 건 108배가 잘 되어서야, 글이 안 써지는 건 108배를 할 때 팔이 좀 이상했어서 그래, 마치 다이몬을 탓하듯이.
어쨌든 '저스트 두 잇!'의 정신으로 글을 쓰고
작품의 질은 다이몬 탓, 작품의 양은 내 몫이라 생각한다.
(커피) 먹고 (108배)기도했으니, 이제 사랑(글쓰기)할 차례다.
오늘은 과연 다이몬이 올 것인가?
안 와도 그냥 저스트 두 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