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는 108배하면 안 되나요?
108배를 한다고 하니 올케가 묻는다.
“형님, 어머니가 뭐라 안 하세요?”
“무슨 상관이야, 운동으로 하는 건데!”
우리 집은 모두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엄마는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베껴 쓰며 (이번이 5번째쯤?) 성당에서 꼬미시움 단장을 맡고 있다. 주일 미사 외에도 회의와 활동을 위해 일주일에 3-4번은 성당에 가시는데 요즘은 모든 게 올 스톱되어 집에서 방송을 보며 기도하고, 성경 베껴쓰기 진도가 엄청 많이 나가고 있다.
*성당 평신도 단체인 레지오 마리애는 로마군 명칭을 본따 군대처럼 조직되어 있다.
분대=쁘레시디움, 소대=꾸리아, 중대=꼬미시움, 레지오=대대, 세나뚜스=연대, 콘칠리움=사단
가장 작은 쁘레시디움이 10명 정도의 모임이고, 최상급인 콘칠리움은 에이레 더블린에 위치한 전 세계 레지오 총 본산이다. 꼬미시움은 꾸리아 10개 전후가 모여 이루는 상급 평의회. 보통 인근 본당 꾸리아들이 모여 지역 공동체를 이룬다. 엄마는 꼬미시움 단장이니 성당 활동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어떤 여인이 지구본 위에서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의 꿈 이야기를 듣고 이웃집 할머니는 엄마를 신당동 성당으로 데려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성당에 꿈에 본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우리 엄마는 종교가 없었으나, 집안은 불교였다. 그런데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우리 방에 들어와 한 바퀴를 도셨다고 한다. 엄마는 시골에 가서 허락을 받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게 아마 나 9살 정도의 일인 것 같다. 엄마를 따라 언니들과 나 동생, 그리고 아빠까지 모두 성당에 나가고 세례를 받았다. 나는 대학생 때 주일학교 교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당에서 신부와 갈등이 있었고, 주일학교 교사의 뺨을 때리는 모습에 분개해 냉담을 했었다.
그러다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 48박 49일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고 엄마에게 “다녀오면 성당 주일 예배에 다닐지도 몰라”라고 선언했었다. 까미노를 걷던 첫날 비가 많이 왔고 혼자 걷는 산길이 무서우니 나도 모르게 주모경을 속으로 외웠다. 기도가 끝나고 모퉁이를 돌자 거짓말처럼 거기에 오리손 알베르게가 나왔다. 이후, 길에 있는 거의 모든 성당에 들러 기도를 했다. 그 길에서 나의 기도도 만들었다.
“저와 제 가족과 제가 아는 모든 이가 건강하게 하소서. 행복하게 하소서. 건강할 때 건강함에 감사하며 지키게 하시고, 행복할 때 행복함을 알고 누리게 하소서!”
지금도 나의 기도는 항상 이렇다. 그러나 순례기를 다녀오고도 주일 미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당연히 부활과 성탄 고해성사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주일학교 선생을 할 때 친했던 신부님(당시에는 부제님)과 가끔 만나 술을 마시는데,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고해성사니 알아서 기도해 주세요, 한다. 신부님은 한 번도 내게 주일 미사 의무를 말하지 않았다. 다만, 8월 11일 클라라 영명축일에 꼭 전화를 한다. “널 위해 기도했어”라고.
2년 전 교통사고 후에 00대학병원에 입원했던 것은 그 신부님 때문이었다. 병원사목을 하시는 곳이라. 신부님은 평일과 주일에 미사를 드리러 병원에 오시는 거라, 나도 미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미사를 드리고 나니, 돌아온 듯 마음이 편했다. 그때부터는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 의무를 성실히 지키려 노력 중이다.
다시 108배로 돌아와서, 나는 가톨릭 신자고 108배 운동을 한다. 내게 108배는 운동이고 명상이지 종교활동은 아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은 이야기가 좋아서 듣고, 절이나 마애 불상 앞에서 3배나 5배쯤 절을 하는 데 이것은 인사라 생각한다.
십계명에 첫 계명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이고 이 때문에 절을 타 종교의 행위므로 우상숭배라 말하는 것은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세상 만물 모든 것에 신성이 있다고 믿는데,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든 거라면 하나하나 모두 사랑하시리라 믿기 때문이다.
종교는 상징화된 체계다. 가톨릭의 묵주나 불교의 염주는 모두 기도할 때 숫자를 세기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가톨릭 미사에서도 성찬의 전례 때 장궤에 무릎 꿇는 의식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깊은 절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는 장궤에 꿇어앉을 때 무릎이 아파서 참 싫었는데, 요즘은 그게 가끔 그립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성당을 만나면 들어가 기도를 하는데, 장궤가 있는 곳이면 잠시 무릎을 꿇어보기도 한다.
내게 108배는 운동이지, 종교행위나 우상숭배가 아니다. 크리스마스에 스님이, 석가탄신일에 신부님이 축하인사와 강연을 하는 요즘 시대에 가톨릭 신자가 운동으로 108배를 한다고 하느님이 화를 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하느님이 너무 편협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