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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글쓰기 100일째] 글은 몸으로 쓴다!

EBS 한국영화 100년을 돌아보다, 1부 나의 사랑 나의 영화

예전에 방송을 보는데, 스페인의 시장에서 상인이 하몽(스페인 생햄)을 '키스의 맛'에 비유했다. 쫀득하면서도 깊은 하몽의 맛을 나는 그처럼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삶이 묻어나는 생생한 사람의 말을 뛰어넘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하나? 모 배우는 자연스러운 말투와 보통사람의 생생한 표현을 연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고 했다. 사람들은 평소에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으니까.


다큐의 힘은 진실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최근 다큐멘터리 방송을 작업하면서 인터뷰에 무게중심을 둔다. 녹음실에서 내레이션 양이 적다며 놀라기에 농담으로 “피디가 나 글 못 쓴다고 내레이션을 자꾸 줄여요.”하며 웃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피디는 편집할 때 음악 선곡부터 하고 그에 맞춰 편집해 원고용 가편 파일에도 음악과 자막 등이 모두 들어가 있다. 종편 파일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그래서 원고를 쓸 때 음악까지 신경 써야 한다. 어디를 듣고 어디를 원고로 덮어도 될지. 보통은 원고 더빙이 끝난 후 음악을 넣으니까 음악 작업하는 이들이 원고에 맞춰지는 것과 반대다.


방송작가는 글만 쓰지 않는다. 기획부터 섭외, 인터뷰 질문의 구성과 전체 구성, 촬영 후 편집할 때 실제 인터뷰를 가지고 새롭게 내용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인터뷰 질문을 뽑기 위해 그들이 출연한 영화, 이전 인터뷰 등 참고해야 할 자료가 너무 많다. 되도록 많은 자료를 보고 그에게 딱 맞는 질문을 던져야 좋은 인터뷰가 나올 텐데 언제나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영화 다큐라 인터뷰한 배우, 감독들의 영화는 거의 다 보려고 노력했다. 진짜 영화 100편은 봤을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의 마무리로 원고를 쓴다. 원고를 쓸 때마다 인터뷰를 반복해 들으며 오랜 세월의 경험과 그들의 진정성이 담긴 인터뷰만큼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이번에는 영화 <기생충>의 히로인 조여정 배우가 내레이션을 하기로 하면서 원고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영화 <기생충> 현장과 봉준호 감독에 대한 코멘트, 그리고 배우로서의 입장을 감안해 내레이션 원고를 수정하면서 분량도 늘렸다.


“연기가 일이잖아요.”

조여정


성우 버전으로 썼던 것을 배우 버전으로 수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명세 감독님이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 가운데 명장면으로 꼽은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배우 김보연이 웃다가 우는 장면에서 배우는 내레이션을 어떻게 해야 할까? 조여정이 영화를 볼 때 선배들의 연기를 “전투적”으로 본다는 인터뷰가 기억나 1차 원고를 써두고 현장에서 배우와 의논을 하며 수정했다. 내가 인터뷰 이야기를 했더니 조여정 배우는 웃으며 “제 일이잖아요” 하는데 그 당연한 말이 참 예뻤다.


EBS 한국영화 100년을 돌아보다 _ 1부 나의 사랑 나의 영화 _ 예고 (2020년 5월 11일 저녁 10시 40분 방송)


오늘 방송이다. 사고 없이 방송을 잘 타기를 바랄 뿐이다. 방송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메시지를 돌렸더니 배우 매니저가 전화로 “전체에서 5분은 나오나요?” 물었다. “음 방송시간이 48분인데 우리가 인터뷰한 분들이 20명이 넘어서요....” 세계적인 배우 이병헌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래도 배우 이병헌의 인터뷰가 처음 중간, 끝에 나누어서 6번 정도 들어갔으니 3분은 되지 않을까? 봉준호, 이장호, 배창호, 이명세 감독님 다음으로 출연 분량이 많다!


봉준호 감독님은 영화 <기생충> 때문에 특별히 분량이 많고, 이장호, 배창호, 이명세 감독 삼대(三代)는 따로 특별히 모여 70-80년대 충무로에 대한 기억과 서로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 등을 좌담 형식으로 인터뷰했다. 그 날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 중이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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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 한 분 모두 특별한 분들이고 1-2시간에 걸친 인터뷰 전부 소중한데, 멋대로 자르고 붙여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이번에 내레이션을 최소화한 이유가 더 많은 인터뷰를 담고 싶어서였다.


<108배 108일>을 글로 남기면서 글은 정말 몸으로 쓰는 거구나 깨닫는다. 내가 진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쓰는 것과 상상해서 쓰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앞으로도 보다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하고, 이미 경험한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좋은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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