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새벽 6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는데 처음으로 발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어제 방송사고로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으니...
잠시 발을 스트레칭하고 다시 하려는데 이번에는 계속 문자와 sns가 신경 쓰였다.
작년 10월부터 준비해 어제 방송한 ebs 한국영화 100년을 돌아보다, 1부 <나의 사랑 나의 영화> 방송 중 오디오 싱크가 안 맞았다. 방송사고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가장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방송이 시청자에게 제대로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 방송을 위해 애써준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
방송국에서는 아침에 비상회의를 했단다. 외주 제작사인 우리도 어젯밤부터 초비상이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으니 108배를 하면서 자세가 틀어져 발목에 무리가 갔나 보다. 어젯밤 2시 넘어 겨우 잠들었다가 밤새 끝나도 끝나지 않는 영화 촬영 현장에 휘말려 수 백 명의 배우, 감독들에 치이는 꿈을 꾸다가 퍼뜩 눈을 뜨니 6시도 안 됐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일단 108배부터 하려 했던 것인데, 무릎도 아니고 발목에서 소리가 나다니. 겨우 마음을 다잡고 108배를 하며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이내 숫자를 세고 자세를 확인하며 108배에 집중했다.
“또 다른 세상과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90년대 휴대폰 광고가 떠올랐다.
108배 101일이 되니 이제
108배를 하는 동안, 일에 대한 생각을 꺼버릴 수 있구나.
108배를 마치고, 일요일에 전달받은 마스터 파일 LOW 버전을 다시 복기했다. 자막이 틀리거나 오디오가 튄 부분을 확인해 보니 역시, 자막 수정했던 부분이 문제였다. 기술적인 문제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도 누구의 잘못을 떠나 일요일에 받은 파일을 확인하기만 했어도 바로잡을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제는 정말 자려고 누웠다가 이불킥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정말 간단한 처리할 수 있는 실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송이 온에어 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오늘 수정 작업할 예정이고 나도 오전 내내 파일을 다시 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한 번 더 확인해 보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그렇게 했다.
기술적인 부분으로 인한 사고지만 내 새끼가 온전히 방송되지 못한 것
그로써 시청자들에게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 마음 아프다.
예전에 어떤 방송국은 기술시사와 주조 시사까지 최종 납품 후 두 번의 시사를 더 하기에, 뭐 이렇게까지 심하게 하나 했었는데, 만약 이번에 그렇게 했다면 방송 사고를 막았을 것이다. 아 내가 일요일에 받은 파일을 최종적으로 한 번만 더 들여다봤어도....
어차피 벌어진 일, 후회해야 소용없지만
같은 실수를 막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언제든 나도 틀릴 수 있고
누군가의 작은 실수가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잊지 말자.
어쨌든 오늘의 가장 큰 소득은
108배를 할 때, 머릿속 전원을 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잘 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