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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글쓰기 104일째] 부부의 세계 안 봤어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요즘 최고로 핫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지 않았다. 이해 불가능일 게 뻔하다. 내용은 대충 안다. 지지리 궁상 이혼에 불륜에 재결합에 아이 문제까지 보지 않고도 골치가 아프다. (불륜 드라마에서 멋진 연기력을 선보인 김희애는 황소자리다. 황소자리는 불륜을 참을 수 없다. 헤라 때문에 소가 되었던, 안정된 결혼생활을 원하는 이오가 황소자리니까)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면 난 미스터 트롯도 보지 않았다고 모른다고 해 버린다. 어떻게 그런 걸 안 보나 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안 보고도 사는 데 아무 문제없다. 그들은 내가 읽는 책을 안 읽는다. 난 오늘 한 달에 한 번 책모임 '명작클럽'에서 트루먼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읽고 이야기할 건데, 사람들은 그 책을 얼마나 봤을까? 나도 영화가 아닌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술은 남자랑 마셔야지. 왜 여자들이랑 쓸데없이...”

“한 번 갔다 오자!”


불혹, 세상의 유혹에 끌리지 않는다는 나이가 넘어서도 싱글인 내게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그러면 나도 물었다.


“결혼하니까 좋아?”


주변에 재혼한 사람들이 꽤 된다. 이혼한 사람은 더 많다. 그래도 그들은 내게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제는 미소로 맞받아치며 속으로 생각한다. 정말 지치지도 않는구나! 두 번째 결혼한 사람이 남자를 소개해주겠다 하니 이제는 그냥 아무 말 안 한다. 정말 불혹이 된 것인가? 미혹되지 않는 나이인가?


108배를 하면서 <티파니에서 아침을> 떠올렸다. 오늘 책모임 때문에 어제 영화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하면 책보다 영화, 홀리 고라이틀리라는 이름보다 오드리 헵번이 먼저 떠오른다. 까만 이브닝드레스에 검은 선글라스 차림으로, 티파니의 반짝이는 보석들을 구경하며 빵을 먹는 여자. 아침부터 “심술궂은 빨강”이 올라온 여자는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리드미컬하게 걸어간다. 아무리 봐도 첫 장면이 참 멋지다!

movie_imageC73C85B1.jpg 전갈자리의 상징, 선글라스에 검은 옷.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나를 보고 기겁을 했던 별자리쌤이 떠올랐다. 천칭자리에 전갈자리가 함께 있으니까!

가난한 작가 폴 바잭이 이사 오면서 그의 시선으로 본 홀리의 모습은 신기하다. 언제나 열쇠를 잃어버려 한밤중에도 이웃을 괴롭히고, 집에는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이 여행 가방이 쌓여있다. 고양이는 이름도 없다. 수많은 사람과 파티를 즐기며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꾼다. 결혼을 하면 품격 있고 아름다운 집에서 가구를 들이고 고양이 이름도 지어주고 행복하게 살 거란다. 배우를 만들기 위해 매니저는 그녀에게 불어를 1년이나 가르치고, 촌티를 벗게 했는데 카메라 테스트 전날 도망쳐 기회를 날렸다. 그러나 밤마다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윗집 남자 외에는 아무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 언제나 존재 자체로 빛나고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뭐든 해준다. 화장실에만 다녀와도 50달러씩 벌지만, 그녀의 주 수입원은 싱싱 교도소에 일주일에 한 번 면회를 가서 날씨를 전달해주고받는 100달러다.


책을 볼 때까지는 못 느꼈는데, 영화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요즘 왜 가구에 꽂혀있는지. 보통의 사람들은 결혼할 때 혼수로 가구를 마련한다. 일체를 싹 마련한 다음 결혼해 살면서 또 하나씩 채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단칸방에서 시작하든 강남의 아파트에서 시작하든 어쨌든 결혼할 때 새 집에 새 가구로 시작하므로 가구는 혼수다. 혼수로 구입하면 가격 할인도 해준다.


난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혼수 가구도 해 본 적이 없다. 내 방의 침대와 서랍장, 화장대는 모두 짝이 맞지 않는다. 큰마음먹고 화장대를 샀던 게 10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러니 내 가구들은 모두 오래되어 낡고 망가지고 엉망이다. 요즘 108배를 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고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가구와 인테리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남들은 결혼을 하거나 새집을 사면 일체를 싹 개비하는데 나는 결혼이나 독립을 언제 할지 알 수 없으니 지금, 이 상태에서 가구라도 새로 사자!


미니멀리즘이니 어떠니 떠들어도 일단 삶에는 필요한 것들이 있고, 그것을 수납하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저분하게 쌓인다. 청소라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되도록 어지르지 않으려 하지만 제대로 된 수납공간이 없으니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요즘 인터넷을 열거나 스마트폰으로 SNS를 하면 광고창에 침대와 가구 광고가 넘친다. 똑똑함이 지나친 AI는 내가 매일 검색해대는 가구와 침대를 어서 사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뭐 사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해댈 것을 안다. 미혹되지 않으리라. 제대로 검색하고 비교하고 그다음에 사야지.


그런데 쓰던 가구를 버리는 데도 돈이 든단다. 내가 할 수 없고, 남편 찬스나 뭐 그런 것도 없으니 그냥 돈으로 해결하지 뭐. 언젠가 내가 병원에 갈 때 운전해서 혼자 갔다가 검사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날도 있다. 이제 수면 내시경은 보호자가 필요하다는데 난 그 망할 놈의 보호자가 없어 작년에 건강검진을 못 받았다 했더니 친구가 그랬다.


“그렇다고 남편이 생기면 네가 해줘야 할 일이 더 많을 걸. 그냥 돈을 써!”


그래 가구 치우는 것은 배송비에다 얼마를 얹어주면 된다. 병원에 갈 때는 택시를 타자. 그런데 수면 내시경은 어떻게 해야 하지? 모시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나? 간식도 사다주고 아이들, 어르신들 병원 모셔다 준다는데 나는 안 될 게 뭐야.


“당신은 뭐가 문제인지 알아, 이름 없는 아가씨?

당신은 비겁해요. 용기도 없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좋아, 인생은 실제야'라고 하기가 무서운 거겠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거예요. 참다운 행복을 얻기 위한 진정한 기회니까. 서로를 소유하기도 하는 거예요. 당신은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며 길들지 않는 것이라 하죠. 그러면서 누군가가 우리에 가둘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있잖아요, 베이비. 그러면서 당신은 이미 우리에 갇힌 거예요. 자기가 만든 우리에 말이지. 텍사스에 튤립도 소말리랜드도 아니야. 당신이 가는 모든 곳이지. 어디로 도망치든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올 뿐이야!”

-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바잭이 홀리에게


“나 너무 두려워요, 친구. 그래. 드디어 이런 식으로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으니까. 내던져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 홀리


영화와 소설의 결말이 완전히 반대다. 나는 소설 속 홀리가 더 좋다.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가, 트루먼 커포티는 1924년 9월 30일 오후 3시,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태양별자리는 천칭자리, 달별자리는 전갈자리다. 태양과 달별자리 모두 천칭자리에 그 가운데 플루토가 자리한 나로서는 소설에 더 끌릴 수밖에 없나 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여주인공 이름은 홀리 고라이틀리다. 홀리 ‘holly’는 여자 이름인데 호랑가시나무, 잎가에 뾰족뾰족한 가시가 돋아 있고 새빨간 열매가 달리는 나무로 흔히 크리스마스 때 장식용으로 쓰이는 그 나무의 이름이기도 하다. ‘lightky’는 가볍게, 부드럽게, 약간, 조금 등의 뜻이니 ‘go lightly’는 “가볍게 간다” 인가?


홀리는 “심술궂은 빨강”에 대해 블루 blue, 우울함과는 다른 그보다 더 깊은 감정이라고 했는데, 호랑가시나무에는 새빨간 열매가 달린다. 심술궂은 빨강이 올라오면 택시를 타고 티파니 앞으로 가는 것으로 달래는 홀리는 가볍게, 부드럽게 여행자처럼 살고 싶었을까?


“내 잣대는 누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예요.”

-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 홀리


어쨌든 나는 홀리처럼 돈 많은 남자과 결혼해 그의 돈으로 가구를 살 때까지 미루지 말고 내 돈으로 가구를 사야겠다. 티파니처럼 비싼 것은 못 사도 우아하고 품격 있는 것으로 골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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