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
뜨개질을 배울 때, 모임의 언니들은 생전 처음 대바늘을 잡아본 나를 붙잡고 끝까지 모자를 완성하게 해 주었다. 결국 5시간이 걸려 모자를 완성하고 머리에 써보니 정말 기뻤다. 그제야 언니들은 가족 모임과 약속도 미루었다고, 내게 뜨개질의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참 고마운 언니들이다. 그 덕분에 나는 뜨개질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가졌고, 찬바람이 불면 한 달에 한 번 모여 앉아 세이브 더 칠드런, 아이 모자를 뜨고 수다를 떤다.
뜨개질은 코 잡고 안뜨기 겉뜨기만 배워도 모자 하나를 뚝딱 뜰 수 있다. 겉뜨기와 안뜨기는 뜨개질의 기본이다. 다른 스티치도 결국 이 뜨개질의 변형이다. 그러니 기본을 잘 해야 다양한 뜨개질을 할 수 있다. 뜨개질은 단순 반복의 작업이지만 코 잡는 방법도 여러 가지고, 자칫 코를 놓치거나 갑자기 코가 늘어나기도 한다. 마무리하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한다.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안뜨기가 참 싫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어떻게 살아.”
“그래도 손가락이 너무 아파.”
“안뜨기 하면 너 좋아하는 겉뜨기를 할 수 있다 생각하고 해.”
그러나 결국 나는 며칠 만에 유튜브를 뒤져 원형뜨기로 겉뜨기만 해서 모자를 완성하는 방법을 찾았다. 언니들은 뜨개질 신동이라 추켜세웠지만 하고 싶은 겉뜨기만 하기 위한 나의 꼼수였다. 그래도 고무뜨기를 하려면 안뜨기를 해야 하고, 겉뜨기만으로는 단조로우니 헤링본스티치나 우븐스티치 등 다양한 뜨개질을 하게 되고 그건 안뜨기보다 더 손가락이 많이 아프다. 클러치를 뜨려고 도전했던 우븐스티치는 거의 공예에 가까웠다. 그래도 해 놓고 나면 예쁘고 마음도 뿌듯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클러치나 무릎 담요라 더 잘 쓴다. 어쨌든 마음이 동하면 하게 되어 있다. 대학교 때 한문소설을 배웠는데 작자 미상의 소설 가운데 그런 구절이 있었다.
비가 오고 남녀가 함께 있으니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으랴
- 작자 미상의 한문 소설
작자가 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20살에 배웠던 그 구절이 가끔 떠오른다. 오로지 한자밖에 없는 책을 해석하고 내용을 새기는 게 너무 힘들어, '한문소설을 염려하는 모임'을 만들기까지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이 한 구절이다. 한 구절이라도 남은 게 신기한가? 하여간 마음이 동하면 무엇이든 하게 되어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비가 오든 해가 나든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하게 된다, 생각한다.
며칠 마음이 계속 시끄러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얼굴에 난 뾰루지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 가느라 아침에 108배를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물에 푹 젖은 솜뭉치 같아, 좀 더 잤다. 결국 엄마가 체리로 유혹해 일어났는데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108배를 하지 않아서 더 힘든 것인지, 너무 힘들어서 108배를 하지 못한 것인지... 하다가 바로 병원에 가려던 것을 미루고, 108배부터 했다. 절을 하고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내친김에 반신욕을 하며 모닝페이지를 쓰는데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지!
때로 쓰고 싶지 않은 글이 있다. 정말 고역이다. 미루고 미루다 겨우 하면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도 꼭 써야 하는 글이니,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 그 글이 필요하다 생각하자. 108배 108일 글쓰기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좋아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이라 열심히 쓴다. 내 마음이 동해서 쓰는 글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다음에 일로 꼭 필요한 글을 쓴다.
그래 이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108배를 하며 집콕 모드로 전환해 열심히 글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