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 가게 될 것이다.”
- 카미유 피사로
내가 처음 반 고흐라는 이름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starry starry night”으로 시작하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의 노래 때문이었다. 같이 다니던 친구가 지하철에서 한 남학생을 좋아했다. 항상 이어폰을 끼고 지하철 문가에 기대 서 있던 남학생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애써 고르고 고른 카세트테이프였다. 원래 그 노래가 돈 맥클린(Don Mclean)의 것이라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의 한 사람. 오죽하면 영화 <가타카>의 주인공 이름이 빈센트인데, 열성 유전자를 타고난 아들이 짧지만 찬란한 인생을 살라고 지은 이름이었다.
어쨌든 빈센트 vincent라는 노래와 함께 처음 인식한 <별이 빛나는 밤>!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질이 묘하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그림 제목이 또 내가 당시에 가장 사랑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과도 같았다.
작품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신화로 남아있는 반 고흐는 평생 900여 점의 페인팅, 1,100여 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총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생전에 단 한 작품이 팔렸고, 유일한 전시회는 술집이었으며, 고갱 때문에 귀를 잘랐고, 마지막 죽음조차 자살이다 타살이다 말이 많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남부에서 독일 개혁 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
당시 꽤 성공적이었던 화가 콘스탄틴(Constantin C. Huysmans)이라는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세에 헤이그의 아트 딜러 구필 앤 씨(Goupil & Cie)에 일자리를 얻어, 20세에는 꽤 성공적으로 일해 아버지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예술 작품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에 분노해 일을 그만두었다.
아버지를 따라 신학 공부를 하고 선교사가 되어 벨기에의 석탄 광산마을에 임시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동생 테오는 형에게 그림을 그리라며 브뤼셀에 있는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 다니도록 주선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배우는 해부학, 모델링, 그리고 원근법 등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1882년 29세 여름에 처음으로 유화로 그림을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32세, 1885년부터다. 동생 테오가 보내준 돈으로 생활했으나 그림 그리는 재료와 모델비로 거의 나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한다.
정신병원을 드나들기도 하던 반 고흐는 1890년 5월, 파리 근교의 오베르(Auvers-sur-Oise)로 옮겨 광적으로 그림을 그리다 7월 27일, 37세의 나이에 들판에서 권총을 쏘아 자살했다. 타살이라는 말도 있다.
파리에 갔을 때 일부러 반 고흐의 무덤을 가기 위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갔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 당시 물감 값을 생각하면 그는 그리 가난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평생 900여 점의 페인팅을 남겼는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32세부터니 5년 동안 그린 것이다. 거의 이틀에 한 작품씩 그림 셈이고, 그보다 많은 드로잉과 스케치까지 생각하면 정말 미친 듯이 그림만 그린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에 태어났으니 태양별자리는 양자리고 달별자리는 사수자리이다. 과연 양자리답게 아트 딜러에서 선교사, 화가가 되기까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고민하다 드디어 찾은 자신의 천직, 화가로서 자신의 재능과 광기를 한 번에 쏟아내고 가버렸다.
처음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면서 별빛이 태양보다 밝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귀가 잘린 자화상 등 그의 자화상과 노란 방, 해바라기 등을 보며 어쩌면 이렇게 노란색을 아름답게 그렸지 했다. 혹자는 압생트 때문에 그의 눈이 나빠졌고 그런 그의 눈에 세상은 그렇게 노랗게 변색돼 보였을 것이라 말한다. 노란색은 새 봄을 알리는 꽃의 색이며 태양의 색이다. 그래서 양자리의 색이다. 귀가 잘린 자화상과 그만큼 유명한 끝없이 계속된 짝사랑도 양자리답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양자리다운 것은 봄꽃이 일시에 활짝 피었다 가버리는 것처럼, 짧은 생애보다 더 짧은 기간 화가로서의 열정과 광기를 한 번에 피웠다 가버린 것이다. 그의 생애 마지막 그림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생각이 들었다.
저는 조카가 제 이름 대신 아버지 이름을 땄으면 더 좋았을 거예요.
요즘 들어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조카를 위해 침실에 걸만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핀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지요.
- 1890년 2월 15일 고흐가 어머니에게
나는 아직까지 아몬드 나무 꽃을 본 적이 없는데, 그의 그림을 보면 벚꽃과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을 지나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는 봄이 오면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꽃은 일제히 생명력을 과시하다 열흘을 가지 못하고 스러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이런 봄꽃에서 나온 말이다.
어제 지인에게 찻상을 얻어왔다. 한옥을 리모델링해 이사한 지인은 좌식 테이블이 맞지 않아 버리겠다 했다. 통원목으로 된 찻상은 스님에게 얻은 것이라 했는데 둘 곳이 없다기에 내가 얻어왔다. 말이 나온 게 지난 토요일인데 월요일에 바로 가져오는 바람에 아직 베란다를 제대로 꾸미지 못했다. 바닥 카펫도 깔고, 창고로 쓰는 책꽂이에 가림막 커튼도 달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어도 어제 깨끗이 치우고 찻상을 놓은 다음, 오늘 아침 커피와 빵, 샐러드로 브런치를 즐기니 매일 듣던 새소리까지 호사스럽다. 행복이 뭐 별건가 싶다.
벽에 혹은 창문에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을 걸어야지 생각하다 반 고흐의 생애가 떠올랐다. 나는 벌써 그가 죽은 37세에서 한참 지났고 내가 무엇에 내 인생을 걸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으니 고흐처럼 일시에 쫙 피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구나. 천천히, 즐기면서 내 삶을 살아가야지. 108배 107일, 1월 13일부터 오늘까지 135일 동안 107번이니 3-4일에 하루 정도 쉬면서 해온 셈이다. 앞으로도 이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계속해야지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