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난 시간들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30분 정도만 눈 붙이고 있으려 했는데 3시간 정도 잤나 보다. 밤샘이 잦고 자는 시간이 일정하지 못해 이렇게 갑자기 낮잠을 3-4시간 자고 일어나기도 한다. 방송작가는 원고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기획과 섭외, 대본, 연출, 편집, 자막 등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일이 있고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점점 예민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잠이라도 푹 자야 하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면 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낮잠을 이리 오래 자 버리면 또 밤을 새야 한다. 도돌이표.
왜 밤을 새우냐고 낮에 일하라고 한다. 그런데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생기고 그것을 해결하다 보면 낮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예를 들어 녹화시간을 옮기려 하면 스튜디오 일정과 카메라팀, 출연자들까지 최소 10명 이상에게 전화를 해야 하고 그것을 다시 확인하는 전화도 그만큼 해야 한다. 한 번에 통화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떨 때는 이거 하나로 며칠이 지나가기도 한다. 전화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많지만 그 시간에 원고를 쓰기는 힘들다. 원고는 초집중이 필요한데, 전화하다가 쓰고 전화하다가 쓰고 하면 시간만 오래 걸린다. 그러니 원고를 쓰는 일은 밤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마감은 지켜야 하니까.
토막 시간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이런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데, 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거나 낮잠을 자거나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게 된다. 그래서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어차피 대기시간이든 뭐든 거의 매일 마감이 있으므로 시간을 밀도 있게 쓰게 된다. 이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대기시간에 다른 일을 한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일을 하면서 잠깐 머리 식히는 중간에 이 일을 하는 식이다.
최근 두 달 동안 무당 예능 유튜브 방송 제작부터 홍보영상과 브로셔, 대통령 기념식 행사 준비까지 7개의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하는데 거의 터보 엔진을 장착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다 마치고 이제는 딱 두 가지 프로젝트만 남았다. 무당 예능 유튜브 방송 제작과 대통령 기념식 행사 준비. 코로나 때문에 방송 녹화는 연기됐고, 대통령 기념식 행사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천천히 진행 중이다. 어디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일이 토막토막 진행되고, 역시 토막 난 시간들이 이렇게 저렇게 흘러간다.
뭔가 초집중해서 할 일이 필요하다. 첫 번째 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책의 기획은 끝난 지 오래됐으니 그 글을 쓰자. 일 하나 하지 않고 놀라고 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느라 바쁘고, 일을 많이 하면 일하느라 바쁘고.... 어차피 바쁜 인생, 토막 난 시간이라도 아끼며 밀도 있는 삶을 살자. 내일부터는 진짜 바빠지겠구나. 우선 오늘 밤은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도 올리지 못한 브런치를 올리고, 자막을 뽑으며 뜨거운 밤을 보내고 내일부터 책 집필을 시작해야지.
작가는 쓰는 사람이다. 책을 낸 사람은 저자일 뿐이다.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108배 시즌1 78일 차 _ 2020년 4월 13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