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벌교 꼬막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 태백산맥, 조정래
며칠 전 여자 셋이 모여 사진 찍고 수다 떨며 성북동에서 창신동을 거쳐 인사동까지 걸어갔다. 산길도 아니고 서울 시내를 1만 5천 보 걷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래도 찬바람 부니 꼬막무침을 먹어야 한다고, 사시사철 꼬막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찬바람 불면 생각나서 또 먹는 꼬막이 맛있다고 창신동에서 인사동을 또 걸었다. 뻘에서 꼬막 따는 할매들 수고 생각하면 이 정도 걷는 것쯤이야 하며 걸었다.
요즘은 뻘배로 레이싱도 하고, 이색 체험으로 관광객들 유혹한다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극한 직업은 뻘배 타고 나가 뻘에서 꼬막 캐는 일 아닐까 싶다. 찬바람 피할 곳 없는 넓은 갯벌에 한 쪽 다리는 나무판자로 만든 널에 올리고 한 쪽 다리로 밀면서 이동한다. 철사가 촘촘히 박힌 채취지로 뻘을 훑는데 마냥 퍼주던 바다도 갯벌도 요즘은 씨가 말라서 예전처럼 넉넉히 주지 않는단다. 7-8월의 꼬막은 산란기라 몸통은 크지만 맛이 미끄럽고 특유의 쫄깃함이 없어 식용으로 좋지 않다. 새로운 알을 품는 2-3월 전까지 맛이 오르니 1월이 딱 좋을 때다.
벌교 꼬막 축제는 10월 말~ 11월 초에 하고, 11월부터 3월까지가 제철이라지만 1월은 되어야 꼬막 맛이 제대로라는 게 현지 할매들의 말이다. ‘시장에 돈 팔러 나온다’는 할매들은 새해 명절 준비하기 위해 이때 제일 열심히 일하기 때문인지도 모르나 난 할매들의 말은 그냥 믿는다. 내가 본 꼬막 채취는 죄 할매들이었고 막내도 최소 50년 이상 꼬막을 캤다.
1월 초의 소한은 말의 대한보다 더 춥다. 이름으로 보면 소한보다 대한이 더 추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대한이 소한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도 있다. 난 이 말을 들으면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말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 추위에 맛이 한창 영근 꼬막을 다려니 할매들의 손등이 추위에 얼어터져 남아나질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이때의 꼬막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소화가 정하섭의 아침을 준비하다 계란 한 알밖에 없는 것을 보고 꼬막을 아쉬워하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으니 꼬막이 제맛이 날 땐데...”하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PPL은 드라마 <허준>의 매실과 소설 <태백산맥>의 꼬막이다. 원래 고막이 표준어였다가 소설 <태백산맥>이후 꼬막으로 표준어가 바뀌었다고도 한다. 소설은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르듯 꼬막맛도 제각각”이라며 아예 조리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술안주로 첫 번째로는 꼬막무침이다. “제대로 꼬막맛을 갖추려면 고추장을 주로 한 갖은 양념의 무침을 거쳐야 한다.” 집집마다 다르지만 어쨌든 기본은 새콤달콤매콤 맛있게 무친다는 것이다. 꼬막을 쏙쏙 집어 양파나 오이 등에 얹어먹으면 없던 입맛도 돌아온다. 그리고 마무리로 밥을 한 술 넣어 비비면 색다른 밥안주가 되는 것이다. 빈 속에 한 잔 꼴깍 마시고는 내장까지 찌르르한 것을 좋아하지만 40대가 되니 술 마시고 꼭 술밥을 찾게 된다. 그 옛날 아버지가 술 드시고 와서도 꼭 밥을 찾았던 이유를 알겠다. 보통은 국에다 한 술 말거나, 고깃집이라면 된장찌개에 남은 고기와 고추 마늘 숭숭 썰어 넣고 끓여 다시 술을 시작하듯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꼬막비빔밥은 술밥 중 최고의 별미다. 단 과식할 우려가 있으니 처음부터 비비지 말고 다 먹다가 마지막에 조금만 비벼야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내가 좋아하는 술안주는 삶은 꼬막이다. 따로 간장을 찍을 것도 없이 삶은 그대로 까서 먹는 게 좋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최고다. 사실 나는 회나 생선보다 이런 패류와 갑각류를 더 좋아한다.
단 꼬막은 잘못 삶으면 질기다. 졸깃한 것과 질긴 것은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의 차이가 아니라 맛있는 것과 못 먹을 것으로 나뉜다. 소화가 말하는 대로 꼬막은 “감자나 고구마를 삶듯”하면 안 된다.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 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때는 나의 빈혈 때문에 요즘은 아버지의 빈혈 때문에 시장에서 꼬막을 보면 보는 대로 사다가 자주 삶아준다. 꼬막을 데칠 때는 무조건 한쪽 방향으로 저어야 한단다. 물이 끓으면 찬물을 좀 붓고 꼬막은 넣은 다음 한쪽 방향으로 계속 젓다가 입을 벌리기 전에 불을 끄는 게 포인트다.
사실 꼬막 삶기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이 많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고 세상 어머니의 수만큼 다양한 레시피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난 그저 알이 오동통하면서 까만 몸체가 졸깃한 것이 살짝 비릿한 꼬막을 안주로 술만 꼴깍 마실 뿐이다. 정작 나의 딜레마는 따로 있다. 이걸 한 번에 까면 식어서 싫고, 한 잔 마실 때마다 까자니 귀찮다. 꼬막 까는 전용 도구도 나왔으나 이걸 사용해도 딜레마는 남는다. 피스타치오처럼 까는 재미로 먹기에는 손에 묻은 물기를 닦는 게 귀찮은 것이다.
K는 한 번에 다 까놓는 스타일이고 P는 내가 까주는 것을 먹었다. L은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 속도에 맞추어 적당히 까준다. 이는 상당한 기술이다. 언제인지 모르게 까놓고 먹어가며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신다. 내가 좀 까볼까 하면 어느 새 서너 개나 예닐곱 개 쯤은 까져 있어서 둘이 나란히 집어먹으며 다시 술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전혀 불편하지 않게 이토록 훌륭하게 꼬막 까는 법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는 것일까?
L은 생선 가시 바르는 것도 꽃게탕의 꽃게살만 발라 주는 것도 참 잘 했다.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누나라 부르는 대신 술값도 밥값도 내겠다고 하고는 그렇게 했다. 항상 바빠서 같이 여행을 가지는 못했는데 딱 한 번 바다를 보러 갔었다. 그 날 L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취했다. 좀 이른 시간에 저녁으로 꼬막 정식을 먹으며 한 잔 하자고 하더니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나온 반찬들을 안주로 밤까지 마시고는 꼭지가 돌게 취해서는 바다를 보고 대성통곡을 했다.
왜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바다를 보며 우는 것일까? 술 마시다 갑자기 바다를 보러 떠나는 사람들이나 술을 마시고 바다 보며 우는 사람을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울고 싶었는데 바다를 보면 눈물이 나는 것일까? 바다의 짠물에 인간의 짠물을 더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L은 그래서 내게 누나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아직까지도 바다를 보면 신나서 뛰어가고 소리를 지르지 울어 본 적이 없어서인가 인생의 깊은 맛을 알기 위해 술을 좀더 심도있게 마셔보면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