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황태와 두부구이
<명태> - 강산에
♬ 겨울에 잡아 올린 동태
삼사월 봄에 잡히는 춘태 냉동이 안 된 생태
겨울에 눈 맞아가며 얼었다 녹았다 말린 황태
잡는 방법에 따라 지방에 따라 그 이름 뭐 뭐가 그리 많은지
여행 가서 저녁을 먹을 때마다 고민이 있다. 소위 맛집들은 죄다 관광지나 한적한 곳에 뚝 떨어져 있는 것이다. 낮에 좋은 풍경 보고 저녁에 술 한 잔 하는 재미로 여행을 가는 건데, 매일 숙소를 옮길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술도 문제다. 음주운전은 지만 죽는 게 아니라 멀쩡한 다른 사람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어 절대 안 된다! 그리고 내 애인들은 대개 운전보다 술을 좋아해 운전은 내 몫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음식은 대개 3-4인분 기준이라 둘이 먹으려면 하나 시켜서 다 먹지도 못하고 질리기 마련이다.
이 딜레마의 해답은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숙소를 시내 중심가에 잡고 근처 뒷골목의 적당히 허름한 동네 술집을 찾는 것이다. 어느 동네나 술꾼들이 좋아하는 단골집이 있고, 그곳엔 그곳만의 적당한 현지 음식을 내는 경우가 많다. 매일 술 마시는 술꾼들을 위해 적당한 가격의 음식을 내고, 농사를 겸하여 술집 하는 주인이 많아서 식재료 대부분을 직접 농사를 짓거나 친구, 가족, 친척들에게서 받아다 쓴다. 태백에서 먹은 황태와 두부구이가 그렇다.
황태와 두부, 모두 강원도에서 겨울에 먹어야 할 맛있는 안주다. 보통은 황태구이 1인분, 두부구이 1인분 이렇게 시켜 먹어야 하는데, 그곳에선 그 두 가지를 함께 묶어 모둠으로 한 접시다. 술꾼들 입맛 다시며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도록 맵싸한 청양고추 중심의 양념장을 듬뿍 얹어내는 데 모양새도 좋고 적당히 간간하다. 양념장이 두 가지 안주를 하나로 잘 조화시켜주는데다 뜨끈하게 다 먹을 수 있도록 지글지글 철판에 내놓는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음식은 역시 전라도가 좋고 그 다음으로 강원도 음식이 내 입맛에 맞는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두부는 적당한 포만감을 주니 밥을 대신할 수 있어 좋은 안주다. 며칠 전 초당두부를 먹고 왔는데도 두부는 언제나 맛있다.
강원도 특산물인 황태는 양념해 구운 것이 아니라 잘 구운 다음에 양념을 얹기만 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적당히 부들부들하면서 씹는 맛이 그만이다. 양념이 배어들어도 눅진해지지 않는다. 단백질이라 속도 보호하고 배부르지 않아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다. 그야말로 애주가 +여행가를 위한 숨은 맛집으로 나도 여기에 그 상호와 위치를 알려주고 싶지는 않다. 태백 어딘가에 있는 그냥 동네 술집이다.
동네 술집의 단점이라면 술꾼 아저씨들이 자꾸 쳐다본다는 것과 주인 아주머니가 끊임없이 말을 건네며 살펴보는 것이다. 낯선 여행객들이 올 집이 아니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몇 번 해보니 쏠쏠한 재미가 있다.
감자값이 폭등했다고 옹심이를 안 하더라 하니, 금방 삶은 감자 한 알을 쓰윽 밀어주는 술꾼도 있고, 저쪽 집에는 옹심이를 하는데 값이 2천원 올랐으면서도 양은 그대로라며 피해야 할 집을 알려주는 아저씨도 있다. 거기에다 ‘이런 좆 비워 먹을 놈’하며 욕을 찰지게 쏟아 붓는 주인아주머니도 정겹다. 그건 내가 들어본 최고의 욕이었다. 전라도의 홍어 좆 같은 으로 시작해 내장을 어쩌구 저쩌구~ 하는 욕보다 더 찰지고 섬뜩한 욕은 처음이었다.
그때 태백에서 나의 애인이었던 K는 내가 술 마시면서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날 그 아줌마의 욕은 계속 되뇌고 음미하며 즐거워했다. K는 내가 운전할 때 이상한 놈이 보이면 내 대신 욕을 해주었는데 아마 한 달 이상은 ‘이런 좆 비워 먹을 놈’ 했다.
명태는 옛날 함경도 감사가 명천지역에 갔다가 태씨 성의 어부가 바친 생선을 먹은 뒤 그 맛이 좋아 지명과 어부의 성씨를 따서 이름지었다 한다. 과거에는 명태가 많이 잡혔는데 이를 보관할 시설이 없어, 보관기간을 늘리기 위해 주로 말려 먹었다. 말린 상태나 크기 보관 상태에 따라 맛도 색도 다르니 여러 이름을 붙였다는데 강산에의 노래처럼 뭐 그리 이름이 많은가 싶다. 동태, 생태, 황태, 노가리, 코다리, 북어 다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안주는 황태구이다.
명태를 추운 겨울날 바닷바람을 쐬고, 얼고 녹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서서히 건조되면 부드럽고 맛있는 황태가 된다. 명태가 황태가 되면 단백질의 양이 2배 이상 늘어나 전체 성분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고단백 식품이 되는데, 특히 간을 보호해주는 메타오닌 등 아미노산이 풍부해 과음 후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야말로 술을 마시면서 깰 수 있는 안주란 황태와 감이 최고다.
황태구이로 유명한 전주의 가맥집 전일슈퍼는 이 황태를 1월에 1년 치를 사들여 창고에 쟁여두었다가 연탄불에 은근히 구워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로 맛을 낸 양념간장에 찍어 먹도록 내준다. 요즘 술집에서도 황태채를 이 비슷하게 내놓는 것이 유행이던데 너무 바싹 말라서 씹을수록 깊은 맛이 아니라 종잇장 같은 맛이 나서 화가 난다. (명태 씨가 말라서 맛이 안 좋은 건가? 다시 명태가 돌아오기 시작했어도 보존을 위해 못 잡게 한다니 당분간은 참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황태는 최소 20번은 부풀었다 녹아야 맛이 제대로 들기 때문에 1월 말부터 2월에 먹는 게 가장 좋다. 따라서 난 대한의 제철안주로 강원도 황태를 꼽는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지만 3한 4온도 맞지 않는 요즘 같아서는 24절기를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2월까지도 괜찮겠다.
덕장에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올수록 더 부드럽다고 한다. 올 겨울은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오고 있으니 황태는 더 부드러울 것이다. 겨울 추위는 싫지만 덕분에 맛있는 안주들이 제 맛을 내서 겨울이 좋다. 태백 가는 열차 타고 겨울 여행을 떠나고 싶다. 뜨끈한 황태와 두부구이 모둠으로 시작해 고니가 잔뜩 든 동태탕으로 마무리하면 소주가 술술 들어가 좋겠다.